◇함께 있을 수 있다면/안나 가발다 지음·이세욱 옮김/전 2권·각권 408쪽·각권 1만1000원·문학세계사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지 못하는 것은 서로 차이가 나기 때문이 아니라 어리석기 때문이야. 생각해 봐, 네가 아니었으면 내가 평생 쇠비름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기나 하겠어?”-본문 중에서》
‘함께 있을 수 있다면’은 아주 느린 사랑 이야기다. 사랑도 속전속결인 요즘 세상에 이 책은 시간을 거슬러 가는 것 같다. 스피디한 전개, 아기자기한 에피소드, 톡톡 튀는 말발 같은 요즘 연애 얘기를 기대했다간 금세 책장을 덮기 쉽다.
그렇지만 조금만 끈기를 갖고 읽어 보자. 이야기가 낯선 방식으로 마음에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방식은 오랫동안 우리가 잊었던 고전적인 러브스토리의 그것이다.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아, 사랑이 이런 것이었지’ 하고 무릎을 치게 한다.
여자의 직업은 밤에 빌딩을 청소하는 미화원이다. 그는 사람과 사물을 몰래 훔쳐보면서 그림을 그리는 게 취미다. 실은 취미가 아니라 재능이다. 천재 소리를 들으면서 미대에 진학했던 여자 카미유는 그러나 사기꾼의 꾐에 빠져 ‘유명 화가의 가짜 데생 유통’ 사건에 연루된다. 세상의 비난에 더는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면서 미화원이 된 카미유. 이 여자가 자신을 흠모하는 섬약한 남자 필리베르의 집에 임시로 거처하면서 사랑이 시작된다. 필리베르가 아니라 그의 룸메이트 프랑크와.
프랑크의 직업은 요리사다. 그는 어렸을 적 식당 주방에 들어간 뒤로 줄곧 거기서 자랐다. TV 속 사회자의 바보스러운 말을 들으면서 낄낄대고, 읽는 거라곤 중고 오토바이 정보지뿐이다. 손일을 하는 프랑크와 인텔리 카미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커다란 간극인데, 두 사람은 여기에다 ‘요리가 일인 남자와 먹는 걸 지독하게 싫어하는 여자’ ‘여자의 말에 귀 기울일 줄 모르는 마초와 한없이 섬세하고 다감한 여자’ 같은 식으로 도대체 아무것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조건만 모아 놓았다.
그런데 이 소설은 대화가 안 될 듯한 사람들의 대화로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이어 간다. “아뇨, 짐이라고 해 봐야 이것뿐인걸요…도둑이 들었어요.” “이런 빌어먹을.” “먹을래요?” “뭘요?” “뭐라뇨? 이 수프 말이죠!”
따라 읽기만 해도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답답하게 느껴지던 대화가 시간이 지나면서 따뜻해진다. “자아, 이건 ‘디스 이즈 애너즈 송’이라는 곡이야. 얼마나 아름다운지 들어 봐. 원망이나 복수심 따위가 느껴지기보다 아직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지 않아?” “그러게….” “이 노래를 들으니까 뭐 생각나는 게 있나 봐….” “넌 그 말 믿어?” “무슨 말?” “첫사랑이 마지막 사랑이라는 말.” “모르겠어. 아니길 바라야지.”
프랑스 주간지 ‘렉스프레스’는 이 소설을 이렇게 평한다. “플롯에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것이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이 소설에 빨려 들어가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는 작가의 발상이다.”
카미유와 프랑크가 서서히 서로에게 물드는 과정을, 쇠약해진 프랑크의 할머니가 삶을 반추하는 과정과 겹쳐 놓으면서 작가는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는 익숙한 메시지를 일깨운다.
등장인물 대부분은 정직하게 노동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요리사와 미화원 등 두 주인공뿐만 아니라 정원 일과 뜨개질을 좋아하는 할머니, 귀족 가문의 장손이면서도 미술관에서 엽서를 팔면서 생계를 이어 가는 필리베르를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작가는 온몸을 움직여 일하는 행위의 숭고함을 보여 준다.
2004년 프랑스에서 나왔을 때 40여만 부가 나가면서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 됐다. 닮은 점이 없어 보이는 남녀가 서로 가르치고 배워 가면서 사랑을 이루어 가는 따뜻하고 행복한 이야기가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저자 안나 가발다(36·사진)의 다른 소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35kg짜리 희망 덩어리’도 국내에서 번역돼 나왔다. 원제 ‘Ensemble, c’est tout’(2004년).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