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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92년 찰스-다이애나 결별 발표

입력 | 2006-12-09 03:02:00


“그들의 결별(separation)은 원만하고 우호적으로 이뤄졌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결혼한 지 10여 년. 수줍은 미소의 앳된 처녀는 농염한 스캔들의 여인이 됐다. 부인과 두 아들을 두고도 첫사랑 상대와 ‘지속적’ 관계를 맺어 온 남편. 결별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평범한 커플인들 주위 입방아가 없을까. 하물며 무뚝뚝한 남편은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찰스 윈저. 왕세자 부부의 불화에 들썩인 건 영국만이 아니었다. 결국 1992년 12월 9일. 존 메이저 총리는 왕세자와 비슷한 무뚝뚝한 표정으로 왕실 파경을 공식 발표했다.

11년 전엔 찰스도 표정이 밝았다. 1981년 7월 런던 세인트폴성당에서 치러진 결혼식. 서른셋에 스무 살 새색시를 얻으니 어찌 아니 좋았을까.

하지만 74개국 10억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은 건 왕세자가 아니었다. 유치원 보모에서 ‘웨일스 공주’로. 메릴린 먼로를 잇는 ‘금발 아이콘’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등장이었다.

치장에만 골몰하는 대중스타가 아니었다. 우아함과 조신함을 갖췄다. 봉사활동은 얼마나 열심인지. 두 왕자를 대동한 그의 미소엔 기품이 넘쳤다. 패션계마저 ‘다이애나 스타일’이라며 열광했다.

이혼은 그가 왕실의 아우라(aura·후광)마저 뛰어넘는 계기였다. 세상의 부러움을 샀지만 고독과 슬픔에 잠긴 여인. 시어머니의 냉대와 남편의 무관심은 완벽한 조연이었다. 같이 바람피웠으되 비련의 여인 몫까지 차지했다. 이혼으로 빈털터리가 된 찰스는 돈만 잃은 게 아니었다.

그리고 1997년 8월 31일 여름의 끝자락.

프랑스 파리 알마교 지하터널에서 파파라치에게 쫓긴 벤츠가 다리 기둥을 들이받는다. 세기적 충격. ‘바람 앞의 촛불’(엘튼 존이 부른 추모 노래)이 꺼졌다. 연인 알 파예드와 동승한 웨일스 공주는 그렇게 신화의 마침표를 찍었다.

블론디 아이콘의 죽음은 온갖 추측성 뉴스를 만들어 냈다. ‘여왕의 사주, CIA 개입’ ‘미국의 퍼스트레이디가 되려 했다’ ‘운전사는 프랑스 비밀요원’…. 10년이 지났건만 영국 경찰청의 재수사 착수 소식까지 들려온다. 온 세상 여인이 꿈꾸는 자리는 녹록지 않은가 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