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공(子貢)이 공자(孔子)에게 “정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스승은 “먹을 것이 풍족하고, 군사력이 충분해야 하며, 백성이 믿고 따라야 한다(足食足兵民信之矣)”고 답했다. 제자가 다시 “그중 하나를 부득이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군사력부터 버려야 한다”고 가르쳤다. 요즘 말로 자주국방보다 민생경제, 신뢰받는 정부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세종대왕은 우리 역사상 최고의 성군(聖君)으로 꼽힌다. ‘농사직설’ 등 많은 농업서적 편찬과 과학발명으로 백성을 잘 먹이려고 애썼다. 두만강 압록강 유역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6진 개척 및 4군 설치로 오늘날과 비슷한 영토를 확보했다. 한문을 몰라 억울함을 호소할 수단이 없던 백성에게는 쉬운 훈민정음을 선사했다. “오랑캐만이 자기 글을 만든다”는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의 결사반대도 소용없었다.
▷8일 일부 대학생, 시민단체가 서울 기독교회관에서 ‘선군(先軍)정치 대토론회’라는 걸 열었다. 발제자 김삼석 씨는 “선군정치는 발음에 따라 ‘성군정치’로도 들리는데 ‘임금님의 정치’를 토론하는 자리…”라고 운을 떼면서 노골적으로 북한의 선군정치를 찬양했다. “같은 민족이 강력한 힘을 갖는 것에 대해 극소수를 제외하곤 다 찬성할 것이다.” “선군정치 덕에 분단을 종식시킬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선군정치를 보는 북한의 시각에는 긍지와 자부심이 담겨있다.”
▷북에 ‘성군’이라도 존재한다는 말인가. 공교롭게도 김 씨는 ‘일심회’사건으로 구속된 최기영 민노당 사무부총장의 처남이고 자신도 1993년 ‘남매간첩’사건으로 4년간 복역한 386출신이다.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도 지냈다. 세상이 자신의 정체를 몰라주니까 혹시 ‘커밍아웃’이라도 하려던 것인가. 때마침 어제 북한방송은 올해를 ‘선군 승리의 해’라고 선전했다. 방청석의 한 새터민은 “군을 위해 인민을 굶겨 죽이는 게 선군정치”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김 씨는 북의 ‘성군’을 위해 공훈을 세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육 정 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