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포럼 참석한 헤커박사 북핵 6자회담 한국 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과 미국의 대표적인 핵전문가인 시그프리드 헤커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명예소장이 12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차 한미 서부지역 전략포럼 오찬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6자회담 한국 수석대표인 천영우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2일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동결돼 있는 북한 계좌 문제를 북핵 6자회담과 분리해 워킹그룹이나 6자회담 한쪽에서 따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 본부장은 이날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동북아시대위원회와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제1차 한미 서부해안 전략 포럼’에서 “BDA 사례에서 보듯 6자회담에서 까다로운 양자(兩者) 간 문제를 논의하다 보면 (북한의) 비핵화 과정을 후퇴시킨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는 18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제5차 2단계 6자회담이 열린 뒤 BDA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워킹그룹이 구성되더라도 이를 6자회담 본회의와 별도로 운영해 서로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과 일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BDA에 묶여 있는 계좌 해제를 6자회담 초기 선결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북한이 이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아 구상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미국은 BDA 문제를 포함해 북-미관계 정상화, 대북 에너지 지원, 평화협정 체결 문제 등을 각각 논의할 워킹그룹 구성도 북한이 핵시설 동결 등 6자회담 ‘초기 이행조치’에 성의를 보이는 것을 전제로 추진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북한이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 당국자는 “6자회담 개최 직후 워킹그룹을 구성할지, 아니면 나중에 구성할지는 전혀 논의된 바가 없다”며 “6자회담에서 논의해 봐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천 본부장은 또 이날 포럼에서 북한의 핵무기를 북한 지도층이 외부 위협을 억지해 체제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안보정책’으로 규정하고 북한은 미국의 대북 체제보장과 경제 및 에너지 지원을 신뢰할 수 있을 때까지 핵 폐기를 미룰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시그프리드 헤커 미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명예소장은 이날 포럼 뒤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이 6자회담에서 미국에 핵군축 회담을 요구할 경우에 대해 “북한이 많아야 6∼8개의 핵무기를 가진 상황에서 군축협상은 상식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헤커 소장은 “6자회담은 북한의 비핵화를 논의하는 장”이라며 “과거 미국과 소련의 군축협상은 수천 개의 핵무기와 미사일을 놓고 벌인 것으로, 경우가 다르다”고 부연했다.
그는 또 미국이 북한에 ‘18개월 또는 24개월 내 북한 핵 폐기 완료’를 요구할 가능성에 대해 “그 기간 내에 다시 재개할 수 없도록 핵 활동을 중단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만 안전하게 모든 핵 시설을 해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