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와 스피커가 달린 여행용 가방. 편하게 들고 다니며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 제공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입는 컴퓨터(Wearable Computer)’의 시대는 갔다. ‘입는 컴퓨터’가 정작 입기에는 불편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작은 휴대용 정보통신 기기를 단순히 옷과 연결시켰을 뿐이다.
그래서 ‘입는 컴퓨터’를 전시회나 언론을 통해 본 사람들은 “신기하다”고 하면서도 “불편해 보인다”거나 “과연 필요가 있을까” 하는 반응을 보인다.
한남대 의류학과 김윤희 교수는 ‘입는 컴퓨터’는 컴퓨터를 몸에 달고 다니는 측면만 강조하고 있어 옷과 액세서리 같은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거의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걸치는 컴퓨터’가 아닌 편하게 ‘입는 컴퓨터’
‘유비쿼터스 패셔너블 컴퓨터(UFC)’가 등장했다. UFC란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에 접속한다는 ‘유비쿼터스’와 ‘패션’을 접목한 용어. 컴퓨터를 옷이나 액세서리처럼 편하게 사용한다는 개념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자전산학과 박규호 교수는 “UFC는 자연스러움과 편리함을 고려한 새로운 개념의 입는 컴퓨터”라며 “옷뿐 아니라 신발, 액세서리 등 모든 패션 요소를 포함한다”고 말했다.
패션과 컴퓨터가 결합하는 사례는 최근 자주 볼 수 있다. 세계적인 명품 업체인 샤넬은 최근 한 컬렉션에서 텔레비전이 달린 여성용 허리띠를 선보였다. 독일 반도체회사인 인피니온도 MP3 플레이어 기능이 들어 있는 스키복을 내놨다.
서울대 의류학과 하지수 교수가 스케치한 조끼형 UFC의 개념도. 컴퓨터가 제공하는 각종 정보를 볼 수 있는 안경과 카메라, 조끼형 컴퓨터가 눈에 띈다. 사진 제공 서울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도 초기 형태지만 육상 선수의 맥박과 호흡, 체온을 측정할 수 있는 ‘바이오 셔츠’를 개발했다. 이 운동복은 10월 열린 전국체전에서 육상선수 20여 명에게 보급돼 선수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ETRI 한동원 그룹장은 “옷이나 장비가 운동에 미치는 영향력을 측정하는 운동부하 검사 결과 셔츠가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았다”며 “몸에 부착된 컴퓨터가 사람의 행동을 제약하지 않는 것이 UFC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한다.
KAIST 박규호 교수팀도 지난달 경기 고양시 한국국제전시장(KINTEX)에서 열린 차세대컴퓨팅산업 전시회에 ‘아이쓰로우’라는 UFC 반지를 선보였다. 근거리 무선통신 방식인 지그비(Zigbee)로 옷에 있는 본체와 연결된 이 반지는 손가락에 끼는 일종의 무선 마우스다. 반지를 낀 손가락의 움직임으로 마우스를 작동하는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엔 명품 메이커가 전자업체와 제휴해서 만든 귀걸이처럼 생긴 이어폰이 등장할 전망이다. 귀걸이에 무선통신장치를 결합하여 주머니 속에 있는 휴대전화를 걸거나 받을 수 있도록 한 이색 액세서리다. ‘톡’ 튀고 싶은 20대 여성에겐 안성맞춤인 상품.
‘감성표현 티셔츠’도 등장할 것이다. 티셔츠를 컴퓨터에 연결하면 그날 기분에 따라 무늬나 색깔을 바꿔 넣어 입을 수 있다.
○직업-취향에 따라 형태와 기능 다양
옷의 형태와 조화를 이룬 ‘후드 티셔츠’형 컴퓨터(왼쪽)와 센서가 달려 있어 환경에 따라 부풀거나 줄어드는 원피스.
편의성을 높이고 멋진 패션으로 꾸미기 위해 UFC는 직업, 나이, 성별 같은 조건까지 고려한다.
서울대 의류학과 하지수 교수팀은 지난해 군용 웨어러블 컴퓨터는 조끼 형태로 제작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임무 특성상 장비가 많고, 걷는 거리가 길며 특수 차량에 타야 하는 경우가 잦은 군인의 행동을 세세히 분석한 결과다.
아기와 떨어져 일하는 젊은 엄마들에겐 목걸이형 단말기가 어울린다. 멋에 눈뜨기 시작하는 10, 20대는 머리띠나 반지 같은 액세서리 형태의 UFC가 더 적합하다. 요실금을 겪는 노인들은 화장실 가는 시간을 알려주는 타이머가 달린 옷이 필요하다.
하 교수는 “UFC의 확산을 위해서는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읽어야 한다”며 “최근 눈에 띄는 발전 가운데 하나가 입는 목적과 사용된 기술이 분명한 UFC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UFC는 현재의 입는 컴퓨터가 발전한 형태다. 따라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ETRI 한동원 그룹장은 “공학 쪽에서도 사람과 컴퓨터 간의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인간 컴퓨터 인터페이스(HCI)’에 관한 연구는 UFC 연구에서 핵심 분야”라고 말한다.
사용 시간이 겨우 3, 4시간에 불과한 배터리 용량 문제와 세탁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전류가 옷 속을 지날 때 발생하는 열도 풀어야 할 숙제다.
하 교수는 “기술의 발전 속도로 볼 때 의류 쪽은 조금 늦겠지만, 2010년쯤엔 액세서리형 UFC 제품이 본격 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