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을 갓 넘긴 어느 날, 그러니까 회사에서 김 과장으로 통하던 시절이었다. 무슨 문학상을 받아서 호기롭게 직원들에게 한턱내겠으니 술집으로 오라는,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체 e메일을 보낸 저녁, 동료 직원 중 한 명이 상을 당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하여 회식은 취소되고 몇 명이 차를 타고 충청도의 상갓집까지 내려갔다. 문상하고 음식 먹고 다시 서울로 떠나려고 보니 시간은 이미 밤 12시를 넘긴 상황. 누군가가 삽교호 근처에 가면 조개구이집이 많다고 해서 거기로 갔다.
초행길이라 조개구이집은 쉽게 찾지 못하고 인적 끊긴 삽교호 부근만 하염없이 맴돌고 있을 무렵, 라디오에서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우리 눈앞에는 어두운 삽교호의 보이지 않는 검은 물들이 펼쳐져 있었다. 말했다시피 삼십대 초반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내가 알던 나날들은 이미 다 지나갔다. 그런데도 이제 내가 삼십대 초반이라고 생각하니 그 사실이 너무나 중대한 진실처럼 여겨졌다. 그러니까 지나간다는 것.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그제야 봄날은 간다는 게 무슨 뜻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봄날은 가네. 그 순간부터 나는 이 노래를 부른 김윤아가 무작정 좋아졌다.
생각해 보면 열심히 산다는 건, 그 많은 나날을 열심히 보낸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뒤, 어느 봄날. 나는 소설을 쓰겠다는 일념으로 중국 옌지의 연변대 외국인학생 기숙사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일이지만 그때는 나름대로 독립운동하러 떠나는 사람처럼 마음이 비장했다. 하지만 어김없이 외로움은 찾아왔다. 외로움은 내게 ‘너 지금 여기에 있니?’라고 물었다. 그런 밤이면 이불을 두 개씩 뒤집어쓰고 눈을 꼭 감았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던 옌지. 거기에서는 4월에도 눈이 내렸다. 비록 아침이면 금방 녹아내리는 눈이었지만 그래도 눈 내리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그러다 결국 참지 못하고 거기서 친해진 기숙사 수위에게 도대체 언제 봄이 오는 것이냐고 여러 번 따져 물었다. 그 노인은 함경북도에서 국경을 넘어온 조선족의 후손이었다. 웃을 때면 늘 눈 옆으로 수없이 많은 주름이 잡히는 그 노인은 내게 “연수야, 이제 곧 꽃이 핀단다”라는 말만 되뇌었다. 노인은 웃었지만 나는 심각했다. 꽃은 무슨 꽃. 앙상한 가지들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 나무에서 꽃이 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언제였던가. 바람이 따뜻해지는가 싶더니 어느 아침에 기숙사 주위의 나무가 일제히 꽃을 피웠다. 꽃이 피고 보니 벚나무였다. 내가 기숙사를 빠져나가려니까 노인이 소리쳤다. “연수야, 꽃이 피지 않았겠니? 꽃나무 아래에서 술을 마셔야지.” 과연 꽃이었다. 나는 기적이라도 본 불신자처럼 넋이 빠져 그 꽃들을 바라봤다.
노인과 나는 결국 꽃나무 아래에서 술을 마시지 못했다. 아침에 핀 꽃이 다음 날 저녁에 모두 지고 이내 여름이 찾아온 때문이었다. 옌지의 봄은 너무나 짧아서 순간순간이 아까울 정도였다. 기숙사 주변의 나무에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김윤아의 두 번째 솔로앨범을 하루 종일 들었다. 봄이 가장 아름다운 것은 꽃이 피기 전까지, 그러니까 간절하게 그 꽃을 기다릴 때까지다. 꽃이 피고 나면 그때부터 봄은 덧없이 지나갈 뿐이다. 내가 서른 번도 넘는 봄을 보내고 나서 겨우 깨닫게 된 진리 같은 게 하나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다.
김윤아. 두 번째 솔로 앨범. 거기에 ‘야상곡’이란 노래가 있다. “바람이 부는 것은 더운 내 맘 삭여주려”라고 시작하는 노래다. 나는 이 노래의 처음과 끝, 높은 음과 낮은 음, 희미한 소리와 또렷한 소리를 모두 기억한다. 옌지의 봄이 너무나 더디게 왔기 때문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그 노래와 사랑에 빠졌다. 그 노래를 떠올릴 때면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이상한 느낌의 슬픔이 떠오른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은 그녀에게, 덕분에 아주 행복했노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런 말은 꼭 헤어진 애인에게 해야 할 소리니, 정말 이상하기만 하다. 김윤아라고 하면, 나는 늘 그런 생각뿐이다.
그해 봄, 그녀 덕분에 내가 알게 된 것이란 바람은 지나간 뒤에야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던 봄날도 마찬가지다. 봄날은 지나간다고 말할 때는 이미 봄날이 다 지나간 뒤다. 어제 피었다가 다음 날 저녁에 지는 꽃잎처럼, 지나가는 봄날은 자취 없고 가뭇없다. 우리가 서로 만난 것은 우리가 서로 만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어떤 시절의 일들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모든 것들은 지나간다. 만약 우리가 행복했다면 뭘 몰랐기 때문이었다. 자우림의 그녀는 그걸 아는 것처럼 목소리에 힘이 넘치지만 솔로앨범의 그녀는 뭘 몰랐던 사람, 그러니까 행복했던 여자다. 그래서 나는 솔로앨범의 김윤아를 더 좋아한다.
봄날은 지나간다. 바람이 불어온다. 주어와 동사로 이뤄진 그 단순한 문장을 읊조릴 때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슬프다. 몰랐던 것들을 이제 알게 되니까 슬픈 것이다. 그렇게 한 해가 가고, 한 시절도 지나지만 결국 우리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은 행복했던 시절의 우리들뿐이다. 이제 막 뭔가 알게 된 김윤아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김 연 수 소설가
■“둘다 봄을 많이 타나봐요”
처음엔 별로였다. 자우림의 보컬이라는 그 여성. “목소리도 좀 이상하게 들리고, 감정이 없는 사이보그 같고….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라고 할 수는 없었다고요.”
그랬던 소설가 김연수(36·사진) 씨는 2002년 봄 어느 날 우연히 가요 ‘봄날은 간다’를 듣고 한순간에 그 여성 김윤아의 팬이 된다. 이 노래는 그 전해 개봉한 영화 ‘봄날은 간다’의 사운드트랙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김연수 씨는 이 영화를 봤지만 엔딩 타이틀곡인 이 노래가 나오기 전에 일어나는 바람에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이 노래를 알게 됐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한국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김연수 씨가 전화로 들려준 사연이다.
‘봄날은 간다’를 들은 날 곧바로 자우림의 1집 앨범과 김윤아의 솔로 앨범 ‘섀도 오브 유어 스마일(Shadow of Your Smile)’을 샀다. 역시, 자우림의 김윤아는 별로였다. 차분하고 섬세한 소설가의 마음에 와 닿기엔 목소리가 많이 독했다.
그렇지만 솔로 앨범의 김윤아는 달랐다. 자우림에선 불특정 다수에게 외치듯 노래하던 그녀가 솔로 앨범에선 오직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을 위해서만 부르는 것 같았다. “가수 김윤아가 아니라 여자 김윤아 같았다”고 김연수 씨는 말한다(흥미롭게도 김윤아도 한 인터뷰에서 “솔로일 때 저는 완전한 여자예요. 그런데 자우림에 속해 있는 김윤아는 무성(無性)이에요”라고 밝혔다).
자꾸자꾸 노래를 들으면서 김연수 씨는 ‘내가 아는 것을 그녀도 알지 모르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꽃이 모두 지지는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질 것을 아는 사람의 마음, 사랑이 아직 다 끝난 건 아니지만 조금 있으면 끝날 것을 아는 사람의 마음. 김연수 씨는 “그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진짜 그 감정을 아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2004년 장편 ‘밤은 노래한다’를 계간지에 연재할 때 그는 김윤아의 두 번째 솔로 앨범 ‘유리가면’을 늘 들으면서 작품을 썼다.
생일이 봄날이어서인지 봄이면 유달리 감상적으로 변한다는 김연수 씨. “김윤아도 솔로 앨범은 두 번 다 봄에 발표했고, 음반에 봄에 대한 노래가 많이 실렸다. 어쩐지 잘 맞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고 소설가는 털어놓는다. 그렇게 ‘마음속의 별’이 됐지만 김연수 씨는 아직껏 김윤아를 만난 적도, 콘서트에 가본 적도 없다. “별은 한자리에 모일 수 없다”며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그는 “콘서트에 초대받으면 갈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