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월 수입과 문화수준이 영화의 취향을 결정한다?
이같은 가설을 부인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한 연구조사 결과만 보면 이 명제는 '오'(誤)가 아닌 '정'(正)이다. 한국사회학회 주최로 15, 16일 서울대에서 열린 2006 전국사회학대회에서 장미혜 한국여성개발원 책임연구원과 이호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발표한 '문화자본과 영화장르에 대한 선호의 다양성'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그 근거다.
이 논문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문화 및 경제 자본 점수가 높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봉준호나 박찬욱이 아니라 홍상수다. 영화장르로는 애니매이션과 멜로드라마라는 결과도 나왔다. '경제자본'이란 월수입을, 문화자본이란 문화예술 피교육기간, 문화활동 횟수 등을 측정해 표준화한 값이다.
왜 홍상수인가. "인물 간의 심리 관계 구현에 있어 어느 문화권의 관객이라도 함께 동의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감독"이라는 것이 경제 및 문화수준이 높은 사람들의 선정 이유다. 홍 감독 다음으로는 올해 '괴물'로 한국 영화 관객동원 신기록을 세운 봉준호 감독과 '어둠 속의 댄서'로 국내에서 유명해진 덴마크의 하스 폰 트리에 감독이 뒤를 이었다.
영국 노동자계급의 사회문제를 많이 다루며 진보적인 성향의 영화를 만든 켄 로치 감독은 문화자본 점수는 높으나 돈은 별로 없는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를 얻었다. 반면 수입은 많으나 문화자본이 취약한 사람들에게는 싫어하는 감독으로 지목되어 눈길을 끌었다.
한편 문화자본이 높은 계층이 선호하는 영화 장르로는 애니메이션, 예술영화, 다큐멘터리, 멜로물의 순이었으며 이들은 '성인영화(에로물)'를 제외한 모든 장르의 영화를 즐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 연구원은 문화자본은 높지만 경제자본은 상대적으로 낮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르로 애니메이션이 꼽힌 데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애니메이션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큰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혔다.
문화자본과 경제자본의 점수가 비교적 낮은 점수를 받았던 사람들이 지난해 인상 깊은 영화로 지목했던 영화들은 '괴물', '왕의 남자', '웰컴투 동막골' 등으로 대부분 국내영화라는 점이 눈에 띈다. 반면 문화자본의 점수가 높은 사람들에게는 19세기 영국사회에 대한 문화적 이해가 요구되는 '오만과 편견'이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로 지목됐다.
장 연구원은 "문화자본이 풍부한 사람들일수록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감독을 선호하는 것은 문화에 대한 관용성이 높기 때문"이라며 "연극, 뮤지컬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접할 수 있어 대중적인 문화 장르로 인식되는 영화에서도 관객의 취향에 문화자본 영향력이 여전히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는 8월과 9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주관으로 15세 이상 80세 미만의 서울 시민 1001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문화자본은 정규학교 예체능 시간이나 특별활동 시간을 제외하고 문화예술을 받은 기간을 개월수로 측정하여 표준화한 값, 각 문화영역 인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점수로 환산한 값, 가족과 함께 클래식 공연, 영화, 미술전시회를 보러 간 횟수, 부모님과 함께 교양도서/소설 등 책을 사러 서점에 간 횟수 등 5개의 설문문항에 대한 분석을 통해 요인점수로 환산한 값으로 설정했다. 경제자본은 월수입을 기준으로 삼았다.
유성운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