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에린이라고 불리는 세계.
이곳에 두갈드와 센마이라는 신도시가 생겼다. 에린 역사상 최초의 개인 소유 주택을 보급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인구 260만 명이 넘는 에린에서 공급 가구는 522채에 불과했다. 결국 집값 상승을 우려한 에린 정부는 묘책을 짜냈다.
우선 정부는 새로 조성한 택지를 직접 파는 대신 길드라는 사용자 조합에 임대하는 방식을 택했다. 길드는 국가로부터 토지를 빌려 성(城)을 짓는데 그 성 안에 일반인용 주택을 건설해 분양했다. 성은 8주가 지나면 낡아 무너지고 토지 이용권은 다시 국가에 귀속된다.
일반인은 주택을 분양받은 뒤 임차료는 길드에 내고 주택을 되팔 때에는 토지를 소유한 정부에 되팔아야 했다. 되받는 가격은 처음 분양가의 90%였다.
에린은 게임회사 넥슨의 온라인게임 ‘마비노기’에 등장하는 가상 세계. 이 세계에는 ‘하우징 시스템’이라는 부동산 정책이 있다. 현실의 ‘반값아파트’ 를 떠올리게 하는 정책이다.
반값아파트 정책은 국가가 토지를 소유해 임대하고 소비자는 건물만 갖는 ‘대지임대부(附)’ 방식이나, 반드시 국가에 되파는 조건으로 토지를 분양받는 ‘환매조건부’ 방식으로 아파트 분양가를 낮추는 정책을 말한다. 마비노기 하우징 시스템은 이 두 방식을 섞어 사용했다.
마비노기의 길드가 성만 소유해 성 내 주택을 일반인에게 분양하고 정부(게임회사)에는 토지 임차료를 내는 것이 바로 대지임대부 방식이다. 일반 사용자는 분양받은 주택을 반드시 정부에 되팔아야 하는데 이것이 환매조건부 방식인 셈이다.
길드는 성을 짓는 데 들어간 건축비와 정부에 내는 토지 임차료를 일반인에게 받는 임대료와 주택 분양가의 5%에 해당하는 수수료로 충당한다. 하지만 임대료와 수수료가 지나치게 높아지자 두갈드 신도시 주택 261채 가운데 100여 채가 미분양되기도 했다. 길드가 분양가를 턱없이 높일 수 없는 이유다.
일반인은 분양받은 주택을 반드시 길드에 되팔아야 하므로 일반인 사이의 부동산 매매는 불가능했다. 에린 신도시에 투기가 없었던 배경이다.
게임 속의 부동산 가격은 이렇게 안정을 찾았다. 현실에서도 에린의 부동산정책이 통할지 궁금해진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