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6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개시 나흘 전, 영국의 정보기관은 교사 레너드 다우를 전격 체포했다.
다우는 영국 일간지 데일리텔레그래프의 크로스워드 퍼즐(crossword puzzle·십자말풀이) 단골 기고가였다. 그가 만든 5월 2일자 퍼즐의 정답엔 ‘유타’가 포함돼 있었고, 2주 뒤엔 ‘오마하’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멀베리’, ‘넵튠’, ‘오버로드’….
유타는 연합군이 상륙할 지점의 암호명이었고, 오마하와 멀베리는 상륙작전을 위해 영국에 건설 중인 항구의 이름이었다. 더욱이 넵튠은 해군의 작전계획 명칭이었고, 오버로드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암호명이었던 것.
어떻게 이런 극비 작전계획이 일간지 낱말 게임에 나올 수 있었을까.
하지만 철저한 신문 끝에 내려진 결론은 그저 ‘우연의 일치’였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군부대 근처에서 병사들이 내뱉는 ‘이상한 단어’를 주워듣고 되풀이하는 것을 보고 퍼즐 정답으로 써먹었을 뿐이라는 결론이었다.
어쨌든 이 사건은 오랫동안 믿기 어려운 미스터리로 남았고, 순전히 우연의 일치로 중대사건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혀 왔다.
바둑판처럼 가로와 세로로 배열된 빈칸에 낱말을 채워 넣는 크로스워드 퍼즐은 1913년 12월 21일 미국의 일간지 뉴욕월드에 처음 등장했다. 첫 고안자는 영국 리버풀 출신의 언론인 아서 윈(1862∼1945)이었다.
뉴욕월드에서 새로운 신문용 게임을 만들어 달라는 제안을 받은 윈은 어린 시절에 즐겼던 ‘매직 스퀘어’라는 게임에서 착안해 크로스워드 퍼즐을 개발했다. 처음엔 ‘워드크로스(word-cross)’라 불렸고 모양도 검은색 칸이 없고 흰색 칸만 있는 다이아몬드 형태였다.
윈의 크로스워드 퍼즐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1924년 출판사 사이먼 앤드 슈스터는 연필이 달린 단행본으로 워드크로스 퍼즐북을 출판했고 불과 몇 년 사이 75만 부가 팔렸다. 사이먼 앤드 슈스터는 아직도 이 시리즈를 계속 내고 있다.
오늘날까지 크로스워드 퍼즐은 최고의 지적 유희 게임으로 평가받는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저녁 시간이면 빠뜨리지 않는 소일거리 중 하나가 크로스워드 퍼즐 풀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미권에선 크로스워드 퍼즐로 신문의 질을 평가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1942년부터 빠짐없이 게재되고 있는 뉴욕타임스의 크로스워드 퍼즐은 가장 명성이 높고 그만큼 풀기도 어렵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