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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나눔이 있어 세상은 따뜻합니다

입력 | 2006-12-22 03:01:00

2006년을 따뜻하게 만든 나눔의 주인공들. 이들의 맑은 웃음에서 어려운 삶을 이겨내고 척박한 세상을 가슴에 품은 넉넉함이 느껴진다.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도 함께 웃을 수 있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빈자일등(貧者一燈).’ 불교에서 쓰는 말로 ‘가난한 자의 등불 하나’라는 뜻. 석가모니가 사위국(舍衛國)에 머물 때 국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각각 신분에 걸맞은 공양을 했다. 난타(難陀)라고 불리는 한 가난한 여인도 온종일 구걸하여 얻은 돈 한 푼을 가지고 등을 하나 만들어 바쳤다. 수많은 등불 속에서 이상하게 그녀가 바친 등불만 새벽까지 남아 밝게 타고 있었다. 옷자락으로 흔들어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석가는 난타의 정성을 알고 그녀를 비구니로 받아들였다.

예수도 헌금함 맞은쪽에 앉아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제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말했다.

어느 해보다 서민의 눈물이 많고 짜증나는 뉴스가 넘쳐난 2006년이었다. 하지만 밝은 눈으로 찾아보면 이 혼탁한 사회에 희망을 주는 보통사람들이 보인다. 보통사람의 특별한 기부 이야기를 모아 봤다.

○ 가난하지만 마음은 부자

7월 세상을 떠난 이영순(76) 할머니는 정부에서 생활비를 지원받는 기초생활수급자로 힘들게 살면서 모은 돈 100만 원을 “나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있는 이웃들을 위해 써 달라”는 유언과 함께 동사무소에 남겼다. 이 돈은 사회복지법인 용산상희원에 기탁돼 올가을 장애인과 저소득 노인들을 위해 추석 선물을 사고 김장김치를 담그는 데 사용됐다.

역시 기초생활수급자인 이무임(78) 할머니는 8월 초 김해시종합사회복지관을 찾아 수재의연금으로 100만 원을 냈다.

건국대 후문 앞에서 40여 년 동안 담배장사를 하며 돈을 모은 이순덕(79) 할머니는 지난해 1월 건국대에 4억6000만 원 상당의 건물을 기증한 데 이어 올 1월에도 2억 원을 추가로 기부했다.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이 할머니는 6·25전쟁 때 혈혈단신 남쪽으로 내려와 삯바느질을 하며 돈을 모았고 1961년 담배 가게를 열었다. 할머니는 전쟁 통에 헤어진 두 여동생을 위해 40년 동안 매달 5000원씩을 적금통장에 저축했다.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으다 보니 어느새 2억 원이라는 거금이 생겼다. 하지만 5년째 앓고 있는 파킨슨병이 악화되면서 통일을 못 보고 눈을 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기부를 결심했다.

전북 부안에서 평생 농사를 지어 온 정귀임(86) 할머니는 가진 논 1000평을 팔아 마련한 2000만 원을 11월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써 달라”며 장학금으로 기탁했고 임복순(73) 할머니는 6월 간병 일 등을 하며 평생 모은 돈 6000만 원을 강원대 농업생명과학대 자원생물환경학과에 장학금으로 내놓아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충남 천안시청 지하에서 구두닦이를 하는 명덕식(58) 씨는 손님들이 구두를 닦은 뒤 받아가지 않은 거스름돈 52만6340원을 모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놓았다.

서울 노량진시장에서 30여 년째 젓갈 장사를 하는 류양선(74) 할머니는 1월과 11월 3200만 원 상당의 책과 교재를 모교인 서령초등학교에 기증했고 9월에는 제주 서귀포시에 있는 공시지가 1억 원 상당의 땅을 한서대 학교발전 용지로 기부했다.

○ 오른손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익명으로 선행을 베푼 이도 많았다. 3월에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70대 할머니가 평생 버스표와 음료를 팔아 모은 1억1000만 원을 동국대에 기증했다. “서울에 사는 불교 신자”라고만 자신을 소개한 이 할머니는 “나는 비록 배우지 못했지만 젊은이들은 부지런히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장학금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얼굴 없는 천사’는 광주 서구에도 있다. 1년이 넘도록 매달 수백만 원을 불우이웃돕기에 내놓고 있는 익명의 40대 남성의 유일한 기부 조건은 ‘신분을 감춰줄 것’. 이 독지가는 지난해 10월부터 매달 200만 원을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올 4월부터는 400만 원, 올 10월부터는 1000만 원으로 금액을 늘려 불우이웃을 돕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지금까지 기부한 돈은 6000여만 원에 달한다.

전북 전주시에서는 40대 후반의 익명의 독지가가 7년째 완산구 노송동사무소에 돈을 보내오고 있다. 올해도 보낸 쇼핑백 안에는 현금 800만 원과 10원, 100원, 500원짜리 동전 51만3110원이 들어 있는 돼지저금통이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낸 성금은 모두 3373만2900원.

1월에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사는 대구 출신의 70대 노인이 “폭설 피해 복구비에 써 달라”며 아무런 연고가 없는 전남도와 광주에 2억 원을 전달했으며 2월에는 71세의 청각장애 할머니가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동아꿈나무재단에 200만 원을 전달했다.

12월에는 50대와 30대 여성 2명이 동료 학생 어머니의 심장병 수술비에 보태기 위해 김밥을 만들고 있던 전남대 학생들에게 1000만 원이 든 종이 가방을 전달한 후 도망치듯 떠나기도 했다.

○ 나보다 불행한 사람을 위해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사는 황금자(82)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생활안정지원금(월 74만 원)과 기초생활수급자 생계비(월 36만 원)를 아껴 평생 모은 4000만 원을 11월 재단법인 강서구장학회에 기증했다. 간도에서 있었던 기억 때문에 밤마다 환청과 망상에 시달리던 황 할머니는 “이젠 다 산 인생인데 돈 없어서 공부 못 하는 학생들을 돕겠다”며 활짝 웃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공동체인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김군자(80) 할머니도 3월 나눔의 집에 위안부 피해자 전문 요양시설 건립비용으로 1000만 원을 기탁한 데 이어 7월에는 6년간 모은 생활비 5000만 원을 ‘아름다운 재단’에 고아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쾌척했다. 아름다운 재단은 이미 김 할머니가 2000년 8월 기부한 5000만 원으로 ‘김군자 할머니 기금’을 조성했고 기금의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성금을 보태 지금까지 대학생 55명의 등록금을 대줬다.

본보와 아름다운 재단이 공동기획하고 있는 ‘나눔, 삶이 바뀝니다’에 소개된 사회복지사 주동민 씨도 ‘김군자 할머니 기금’으로 대학을 마쳤다.

▶본보 12월 20일자 A15면 참조

▶ [나눔, 삶이 바뀝니다]‘보육원 아이’에서 사회복지사로

황혜경(40) 씨는 1996년 남편과 독일로 해외연수를 간 뒤 1998년 6월 영국 스코틀랜드로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가 글래스고 인근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고 왼쪽 다리를 잃었다. 그는 8년간의 소송 끝에 5월 가해자 측 보험사에서 107만5000파운드(약 20억 원)를 받았고 소송비용을 제외한 보상금의 절반인 50만 파운드(약 9억 원)를 장애인재활전문병원 건립을 위해 만들어진 푸르메재단에 기부했다.

항일독립운동가 박구진(1881∼1951) 선생의 막내아들 박원재(55) 씨는 11년 동안 받은 보훈연금 등을 모아 “어렵게 살아가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돕는 데 써 달라”며 8월에 1억 원을 동아꿈나무재단에 기탁했다. 20년 동안 독립운동유공자 유족으로 인정받기 위한 근거 자료를 찾던 박 씨는 1994년 본보의 도움으로 관련 자료를 찾았다. 그는 “포상을 받던 날 돈을 모아 어려운 애국지사 후손들을 돕겠다고 다짐했는데 11년 만에 약속을 지켰다”며 미소를 지었다.

불의의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김성환(58) 씨는 5월 신장 2개와 각막 2개, 간을 기증한 후 세상을 떠났고 강원 정선군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조성현(46) 씨 부부는 결혼 20주년을 맞아 일주일 간격으로 간과 신장을 기증해 ‘진정한 부부애’를 세상에 알렸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