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 학원 강사 김기환(가명·38) 씨는 9월 21일 학원에서 강의 준비를 하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는 서울에 있는 한 종합병원에서 두 시간에 걸쳐 수술을 받고 두 달간 입원했다 퇴원해 내년 3월까지 통원하며 재활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김 씨의 질병 비용은 얼마일까. 그는 진료비로 1974만 원(건강보험 본인 부담금 680만 원)을 썼다. 하지만 6개월간 한 달 수입(300만 원) 손실 1800만 원과 간병비 200만 원을 감안하면 2000만 원이 손해다. 여기에 교통비 등을 감안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진료비는 여성, 전체 진료비용은 남성=한국인은 질병으로 얼마나 많은 비용을 지출할까.
한 해 동안 진료비로 19조9641억 원(52%), 비진료비로 18조4634억 원(48%)을 사용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정영호 박사팀이 24일 공개한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결정요인 분석’(2003년 기준)에 따르면 비진료비는 교통비(2.4%), 간병비(4.1%), 사망에 따른 손실(28.9%), 소득 손실(12.6%) 등으로 구성된다.
이 연구는 선진국과 달리 약값과 여가손실 등 다른 사회적 비용을 포함하지 않고 있어 이 비용까지 고려하면 비진료비가 진료비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별로 살펴본 질병 비용은 남성이 19조9924억 원, 여성이 18조4351억 원으로 남성이 8.5%가량 많았다.
진료비는 여성이 1조 원 이상 많지만 경제활동인구가 남성에 비해 적기 때문에 질병에 따른 사망과 소득 손실액이 크지 않았다.
사망으로 인한 손실액은 남성이 7조3734억 원, 여성이 3조7318억 원으로 남성이 여성의 2배였다.
▽흡연, 음주, 비만이 문제=정 박사팀은 건강위험요인을 건강행태(음주 흡연 비만 운동부족 고혈압 영양부족 고콜레스테롤)와 환경요인, 기타(보건의료 접근성·사회경제적 요인) 등 크게 3가지로 나눠 질병 비용을 계산했다. 이 가운데 세부 요인별 비용이 계산된 건강행태는 30.9%인 10조624억 원이었다.
흡연, 음주, 과체중·비만 등 3가지 요인의 질병 비용은 7조9209억 원으로 건강행태의 78.7%를 차지했다.
흡연의 질병 비용이 2조9675억 원(전체의 9.12%)으로 수위였다. 담배가 영향을 미치는 질병은 크게 암, 심장, 호흡기계 질환 등 3가지다. 이 가운데 암이 1조3586억 원, 심장혈관계 질환이 1조69억 원, 호흡기계 질환이 6020억 원이었다. 40, 50대가 흡연 질병 비용의 상당액을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주의 질병 비용은 2조7916억 원으로 흡연보다 다소 적었다. 20대에선 음주(680억 원)가 흡연(1477억 원)보다 적었지만 30대에서는 음주(4693억 원)가 약 7배로 늘어 흡연(3749억 원)보다 많았다. 음주의 질병 비용은 40대에서 정점에 이른 뒤 급격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흡연비용은 40∼60대에서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였다.
알코올 전문병원인 다사랑병원 전용준 원장은 “대부분의 사람은 술에 대한 내성을 키워가다 한순간에 많은 비용을 치르게 된다”고 말했다.
과체중·비만은 유일하게 여성의 질병비용이 남성보다 많은 요인이었다. 여성의 과체중·비만 비용은 1조2313억 원(57%)으로 남성의 9305억 원(43%)보다 높았다.
과체중·비만의 질병 비용은 당뇨병(9695억 원), 골다공증(3818억 원), 고혈압(2308억 원)에서 많은 편이었다. 남성의 경우 당뇨병(5337억 원)과 심혈관 질환(629억 원)의 비중이 높았다.
대기오염 전체 비용의 87.6%인 1조234억 원이 암 질병 비용이었다. 흡연에 따른 암 질병 비용이 1조3586억 원인 점을 고려하면 대기오염에 따른 암 비용은 적지 않은 셈이다
▽질환별 질병 비용=질환별 질병 비용은 암 6조1381억 원(16%), 소화기계 질환 5조1357억 원(13.4%), 호흡기계 질환 4조8239억 원(11.3%), 순환기계 질환 4조2990억 원(11.2%) 등의 순이었다. 사망원인별 질병 순서와 유사하다. 다만, 소화기계 질환은 사망 원인에선 5%에 불과했으나 질병 비용에선 13%를 넘었다.
10세(신생아기 제외) 이전까진 호흡기계 질환이 1조2250억 원, 20대에선 소화기계 질환이 4760억 원으로 가장 많았다.
30∼50대는 암이 단연 1위였고, 60대에선 순환기계 질환의 비용이 암을 추월했다. 70대에선 순환기계 질환이 암의 2배에 가까웠다.
정 박사는 “건강정책을 펼 때 사회 비용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면서 “질병예방과 의료기술에 투자해 질병을 줄이면 국민이 경제 활동에 기여하는 무형의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료비와 비진료비의 비율구 분진료비비진료비총계교통비간병비조기사망으로 인한 소득손실작업손실총계남9조4263억 원3992억 원7896억 원7조3734억 원2조36억 원19조9924억 원
여10조5378억 원5348억 원7886억 원3조7318억 원2조8421억 원18조4351억 원계19조9641억 원9341억 원1조5782억 원11조1053억 원4조8458억 원38조4275억 원%52.02.44.128.912.6100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40대 건강을 챙기고 60대 병원비 챙겨라▼
‘40대부터는 건강을 챙기라.’ ‘노후 대책으로 진료비를 준비하라.’
흔히 듣는 이 같은 이야기가 질병 비용으로 볼 때도 옳다는 것이 입증됐다.
40대의 질병 비용은 전체의 21.7%(8조3222억 원)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진료비만으로 따지면 60대(3조4077억 원)가 40대(3조1993억 원)보다 많다. 하지만 간병비, 작업 손실 비용 등 비진료비는 5조1228억 원으로 60대(2조2178억 원)의 2배가 훨씬 넘는다.
40대가 8대 건강위험요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2∼40%였다. 흡연으로 발생하는 질병 비용의 25%, 음주의 40%, 운동 부족의 24%, 비만의 22%, 고콜레스테롤의 30%, 대기오염의 29%가 40대의 몫이었다. 이 중 비만을 제외하곤 나머지 부문에서 40대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40대의 개별 질환별 질병 비용은 간 질환(7015억 원), 근골격계 질환(5856억 원), 정신 및 행동장애(4517억 원), 간암(4042억 원), 위암(2762억 원), 당뇨병(2487억 원), 폐암(1580억 원), 유방암(1454억 원) 등의 순이었다.
첫돌을 맞이하기 이전 영아의 진료비는 2156억 원이지만 비진료비는 1조3039억 원으로 전 연령대에서 비진료비 비중이 가장 높았다. 이는 조기사망에 따른 소득 손실이 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건강 증진 예산이 영아에게 효율적으로 사용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영아를 질병에서 구하면 고령화 추세를 막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미래 경제활동을 통한 사회 공헌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료비 비율은 1∼9세에서 25.1%로, 10대에서 68.7%로 급격히 높아진다. 30대, 40대, 50대는 질병 비용 가운데 진료비가 절반 이하였으며, 20대와 60대 이상은 진료비가 절반을 넘었다. 70대는 진료비 비율이 87.4%로 비진료비의 6.9배였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