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펄펄 날리는 오늘은 내 나귀를 구해
그걸 타고 그 집에 들르리라
그 집 가게 되면
일필휘지一筆揮之, 뻗치고 휘어지고 창창히
뻗은 소나무 아래
지붕 낮게 해서 엎드린 그 집 주위를
한 열 번은 더 돌게 되리라
우선 당호堂戶에 들기 전 헛기침을 해보고
그리고는 내 타고 간 나귀를 살그머니 소나무
기둥에
비끌어 매놓고는
그리고는 냅다 눈발 속으로 줄행랑을 치리라
하는 것이다.
- 시집 ‘자전거 도둑’(애지) 중에서》
이 사람아, 따뜻한 국밥이라도 한 그릇 먹고 가시지 그렇게 눈발 속으로 내뺄 건 무언가. 아무리 세한송백의 선비집이라도 언 손 녹일 화롯불쯤이야 있고말고. 나귀만 해도 그렇지 짧은 처마 밑에라도 매어 두시지, 하마터면 얼음나귀가 될 뻔했네. 고개 흔들며 눈 털 때마다 딸랑거리는 목방울 소리가 살렸다네. 나귀에 실은 등짐이 아니라, 나귀를 놓고 간 사람은 자네가 처음일세. 그 뜻 잘 알겠네. 새해엔 추운 은둔을 끝내고 따뜻한 사람의 마을로 오라는 것 아닌가. 남 몰래 비끄러매 놓고 간 나귀를 타고, 남 몰래 인정을 전하라는 것 아닌가. 그렇더라도 이 사람아, 내 마음 영 언짢으이. 따뜻한 국밥 한 그릇쯤은 먹고 갈걸 그랬어. 아무쪼록 언 몸 잘 녹이시고 희망찬 정해년 새해 맞으시게.
- 시인 반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