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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녕]힘겨웠던 ‘국민 노릇’

입력 | 2006-12-29 19:22:00


언론사 종합 뉴스 데이터베이스인 카인즈(KINDS)의 종합일간지(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10개사) 코너에서 ‘국민’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올해 1년만도 29일 현재 6만2860건의 기사가 뜬다. 각 일간지 평균으로 연간 6286건, 하루 평균 17건씩 국민이란 단어가 들어 있는 기사가 게재된 셈이다. 특히 정치인은 너 나 할 것 없이 ‘국민’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모두 그토록 국민을 챙기는데 국민 노릇 하기는 더 힘들어지고 있으니 이상하다.

▷“대통령직(職) 못해 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약한 국민은 행여 운전사가 주행 중에 핸들을 놓아 버릴까 봐 가슴 졸였다.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아 운전석에 모셨음에도 맘 편한 날이 드물었다. 시켜 달라고 통사정할 때는 언제고 대통령 노릇 못해 먹겠다고 하니, 거꾸로 국민 노릇 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의 마음고생, 몸 고생이 컸던 한 해였다. ‘바다이야기’ 도박에 돈 뜯기고, 땅따먹기 같은 부동산 광풍에 상처 입었다. ‘강남 국민’과 ‘비강남 국민’으로 갈려 그 사이에 건너지 못할 강이 생겼다. 어려운 형편에 세금 내기도 수월찮았지만 나라살림이라도 알차게 잘 꾸려 주면 그나마 고맙겠다. 폭력시위대 때문에 생업을 방해받고, 혈세로 지은 도청 시설과 경찰 버스가 불길에 휩싸였다. 추운 겨울날 ‘악법’을 고치라며 삭발한 종교인도 우리 국민이다. 북의 미사일과 핵에 가슴 졸이는데 한편에선 “우리를 겨냥한 게 아니다”는 태평한 소리도 들어야 했다.

▷고위 공직자와 여야 대표들의 신년사에도 ‘국민’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내년엔 대통령 선거까지 있으니 국민을 얼마나 더 들먹일까. 선거 때 표 달라고 할 때는 ‘국민이 주인’이라고 치켜세우지만 평상시 국민은 장기(將棋)판의 졸(卒)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국민 노릇을 진짜 제대로 해야 국민 대접을 받을 수 있는가 보다. 새해에는 제발 ‘궁민(窮民)’이 안 됐으면 좋겠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