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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집-맛의 비밀]서울 역삼동 ‘호미낙지’

입력 | 2006-12-30 03:00:00


‘말라빠진 소에게 낙지 서너 마리를 먹이면 곧 원기를 회복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나오는 내용이다. 낙지에 함유된 타우린은 숙취 해소와 원기 회복에 좋다. 망년회 술자리로 지친 몸에 생기를 불어넣는 데 제격이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호미낙지’(02-566-7779)는 낙지요리 전문점이다. 특히 김정숙(46) 사장이 개발한 비장의 양념이 들어가는 산낙지철판볶음으로 유명하다.

○ 주인장의 말

고향은 낙지를 구경조차 하기 힘든 강원도 화천이다. 어릴 때 전남 영암의 외가에서 낙지 맛을 처음 봤다. 1993년 결혼하면서 가게를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낙지 덕에 살고 있다.

낙지는 중간 크기의 ‘중낙’이 으뜸이다. 갯벌에서 먹이를 잡느라 다리가 길어진 ‘뻘 낙지’가 최고다. 낙지는 몸 색깔이 자주 바뀐다. 수산시장에서 산 낙지를 사려면 손대지 않고 놀 때 밤색을 띠는 놈이 좋다.

비법은 양념이다. 고춧가루 간장 참기름 들기름 후추 등의 기본양념에 배와 무, 양파가 들어간다. 배 무 양파를 함께 간 뒤 사골 육수에 자작자작 버무린다. 특히 배는 시원하면서도 단맛을 내주는 데 비해 설탕을 쓰면 맛이 텁텁해진다.

다음은 양념의 숙성이다. 처음에는 양념을 무턱대고 냉장고에 보관했더니 한쪽은 짜고 다른 쪽은 싱거워 애를 먹었다. 지금은 양념을 만들어 상온에서 1주일 숙성시킨 뒤 냉장고에 보관한다.

○ 주인장과 식객의 대화

▽식객=낙지가 씹히는 맛이 있으면서도 부드럽다.

▽주인장=전남 고흥의 뻘에 사는 중낙을 쓴다. ‘대낙’을 사용하면 낙지를 적게 넣어도 되지만 약간 쫀득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은 나지 않는다.

▽식=음식이 생각보다 맵지 않다. 낙지 요리는 좀 매워야 제 맛 아닌가.

▽주=그건 양념 맛이다. 너무 매우면 낙지 맛은 ‘까먹고’ 맵다는 양념 맛만 기억하게 된다. 낙지 미나리 콩나물에는 저마다 다른 맛과 향이 있다. 양념이 강하지 않아야 재료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가끔 매운 것을 찾는 손님에게는 청양 고춧가루를 더 넣어주는데 권하지는 않는다.

▽식=집에서 산 낙지 요리를 하는 비법을 알려 달라.

▽주=수산시장에서 산소를 넣어달라고 하면 낙지가 이틀은 산다. 혹 낙지가 죽으면 바닷물을 뺀 뒤 깨끗한 물에 씻어 냉동고에 보관해라. 낙지가 죽으면 짠맛이 몸속으로 밴다.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만 쓰지 말고, 반드시 기본양념에 배 무 양파를 갈아 넣어라. 맛이 확실히 다르다.

▽식=입구에 ‘아픔도 살아 있기에 생겨난다. 살아 숨쉰다는 것도 큰 축복이다’라는 글이 있던데….

▽주=장사하면서 좋은 글이 눈에 보이면 써 놓는다. 음식은 물론 마음도 나누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먹는 장사가 참 묘하다. ‘주인 맛’이란 게 있더라.(웃음)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