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드레스, 늘어뜨린 진주 목걸이, 붉은 립스틱…. 영화 ‘타짜’에서 김혜수는 세련되면서 섹시한 패션을 선보여 하반기 유행을 선도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올 상반기 ‘크로스 섹슈얼’ 열풍을 일으킨 배우 이준기. 이준기 외에 드라마 ‘궁’의 주지훈 등이 여성적인 장식이 있어도 결코 여성스럽지만은 않은 독특한 남성 패션을 이끌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그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옷이 있다.
벨벳 트레이닝 운동복을 보면 가수 이효리가 ‘10분’을 외치던 2003년이 떠오른다.
2004년 수많은 여성의 눈물샘을 자극한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탤런트 임수정이 신은 어그부츠(털부츠)는 한국인의 체형에 잘 어울리지 않는데도 크게 히트쳤다.
지난해엔 ‘삼순이’ 김선아의 캐주얼 패션과 ‘프라하의 연인’ 전도연의 크롭트 팬츠가 유행했다.
올해엔 어떤 패션이 거리를 누볐을까.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 패션홍보 전문가가 모여 2006년 패션의 흐름을 살펴봤다.
자리를 같이한 이는 용인 송담대 스타일리스트학과 홍승완 교수 겸 디자이너, 영화배우 조인성의 스타일리스트인 강윤주 실장, 홍보대행사 프레싱크의 오제형 대표.
○ 히트상품? 레깅스와 스키니 진
▽강윤주(강)=2006년 하면 단연 레깅스(쫄바지)와 스키니진(딱 달라붙는 청바지)이 떠오르지. 하의는 달라붙고 상의는 길고 헐렁하게 입는 스타일이 유행했잖아. 덕분에 벨트, 긴 목걸이 같은 액세서리가 주목을 받았고.
▽오제형(오)=스키니진이 유행하면서 유럽 청바지가 떴지. 기존 미국식 청바지가 쑥 들어갔어.
▽홍승완(홍)=인기 드라마의 주인공 패션이 대중에게 인기가 높은데 올해는 특별히 떠오르는 게 없네. 현대극보다 ‘주몽’ ‘황진이’ 같은 사극이 인기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
▽강=레깅스, 스키니진 유행은 해외 스타들의 사진이 인터넷, 잡지 등에 퍼지면서 시작된 것 같아. 영국 모델 케이트 모스, 배우 시에나 밀러, 린제이 로한 같은 스타들이 입고 나온 걸 보고 따라하는 거지.
○ 크로스섹슈얼 & 슬림
▽강=상반기엔 ‘왕의 남자’ 이준기 때문에 ‘크로스 섹슈얼’(여성적인 장식을 패션으로 소화하는 남성)이란 말이 유행이었어. 꽃미남 메트로섹슈얼, 중성적인 위버섹슈얼에 이어 3세대 ‘섹슈얼’ 격인가?
▽오=이준기 머리 스타일의 영향으로 남자들이 뒷머리를 많이 길렀잖아. 액세서리를 하는 남자들도 많이 늘었고. 특히 해골 모양이 인기였어.
▽홍=올봄에 러플(주름장식)이 달린 슈트를 만들어 내놨어. ‘일부 마니아만 입겠지’ 했는데 웬걸? 평범한 일반인들에게도 히트를 쳤어. 드라마 ‘궁’에서 황태자로 나온 주지훈은 여성스러운 역할은 아니었지만 슈트에 나비넥타이, 러플 달린 블라우스를 소화해 각광을 받았지.
▽오=남자들 옷은 점점 날씬해져. 바지통이 좁아지고 재킷도 몸에 달라붙는 걸로. 디올 옴므의 영향이 컸어. 여성스러운 게 아니라 중성적인 매력이라고 해야지. 조인성에게도 잘 어울리잖아.
▽강=10월 부산영화제에서 조인성이 검정 스키니진에 운동화, 벨벳 재킷을 입어서 반응이 좋았어. 귀공자 이미지에서 벗어나 남성다운 매력도 보여줬고.
▽홍=남자들이 헬스클럽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옷으로 뽐내는 시대인 것 같다.(웃음)
○ 유행?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워
▽오=미니멀리즘(장식을 최소화한 스타일)이 올 한 해를 지배하면서 상반기엔 하얀색, 하반기엔 검은색이 유행이었어. 또 1980년대 열풍으로 금속 느낌의 은색과 금색 액세서리가 인기였지. 여성들의 매니시룩(남성복 스타일)도 눈길을 끌었고. 가만있자, 밀리터리룩(군복 스타일)도 유행이었나?
▽홍=세계적으로 밀리터리룩이 유행했지만 한국에선 크게 두드러지진 않았어. 아무래도 한국 남자들이 군대에 질려 그런 것 아닐까.(웃음) 하지만 트렌치코트, 더블코트 등 의상의 대부분은 현대 군복에서 영감을 받은 게 많아.
▽강=유행의 흐름이 정말 다양해졌어. 예전엔 드라마나 특정 의류브랜드 스타일이 히트를 치면 길거리 옷차림이 모두 똑같았잖아. 이제는 아니야. 어떤 사람은 1980년대풍, 어떤 사람은 매니시룩, 이런 식으로 개성이 생겼어. 인터넷에서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까.
▽홍=맞아. 컬렉션이 끝나자마자 온라인 장터에서 가짜 옷이 바로 팔릴 정도야.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넓어진 만큼 스타일도 다양해졌지.
▽오=인터넷 덕분에 지역에 상관없이 모두 패션에 민감해진 느낌이야. ‘압구정 스타일’이 압구정동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니까. 내년에도 개인 스타일링의 흐름이 더 강해지지 않을까? 개성 넘치는 일본 영화배우 오다기리 조처럼 말이야.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2006년 유행 아이템은…아이템 내용 레깅스 및 스키니진-1980년대 쫄쫄이 바지의 부활.
-레깅스는 온라인장터 G마켓에서 약 98만 장이 팔림. 하루 평균 2700여 장이 팔린 셈.미니스커트 및 짧은 반바지 -레깅스 위에 겹쳐 입을 수 있어 노출을 꺼리던 여성들도 미니스커트를 대거 찾음.
-G마켓에서 미니스커트는 하루 평균 2500여 장, 짧은 반바지는 700∼800여 장 팔림. 하얀색 및 검은색-G마켓에 따르면 여름 의류의 45%가 하얀색 계열. 가을겨울 의류의 70%는 검은색 등 어두운 계열.빅 백 및 빅 액세서리-눈에 띄게 커다란 가방, 커다란 액세서리가 인기를 이어감.
-입생로랑 뮤즈백, 샤넬의 코코 카바 백이 대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