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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별]배우 배종옥에 깨달음 준 정토회의 법륜 스님

입력 | 2006-12-30 03:00:00

사진 제공 정토회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가진 게 많은 사람인지 알게 됐어요.” 배우 배종옥 씨는 정토회 지도법사인 법륜 스님을 통해 마음공부를 시작한 뒤 인생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2003년 가을, 나는 몹시 우울했다. 그해 어머니를 잃고, 마음 둘 데 없이 갈팡질팡하는 날들이 계속됐다. 삶의 의미도 목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보던 절친한 친구 희경이(작가 노희경)는 불교 수행 공동체인 정토회에서 하는 ‘깨달음의 장’이라는 마음 수련 프로그램으로 내 등을 떠밀었다. 모태 신앙의 기독교 신자인 나에게 불교에서 하는 수련 프로그램이라. 마뜩잖았지만 친구의 성의가 고마워 별 생각 없이 찾아갔다.

그러나 경북 문경에서의 4박 5일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전국 각지에서 스무 명 정도의 사람이 모여 자기 얘기를 하고 남의 얘기를 들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감정들을 모두 쏟아 놓았다. 수련 마지막 날,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 스님의 강연이 있었다. 스님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고 평범한 수련생으로서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나는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가진 게 많은 사람인지를. 그 전에는 항상 ‘이렇게 살아야지’ 하는 틀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자신을 가두면서 살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털처럼 자유롭게, 그러면서도 이웃과 사회에 ‘쓰이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깨달음의 장에 다녀온 뒤, 나는 법륜 스님의 법문 테이프를 사서 들었고 그분의 강론을 담은 책인 ‘금강경’과 ‘반야심경’을 읽었다. 나의 모든 문제는 봄눈 녹듯이 사라졌다.

다시 한번 밝혀 두지만 나는 기독교 신자다. 내가 스님을 존경하고 그분을 따르는 것은 불교적인 차원이 아니다. 바쁜 현대인들이 일과 마음공부를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스님은 종교를 넘어, 현대인들이 일을 하면서 마음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다.

화려하게 보이지만 배우는 외로운 직업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습관 하나만 바꾸기도 힘이 드는데 연기를 제대로 하려면 완전히 다른 인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작품이 끝나면 또 그 인물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마음이 너무 허해진다. 화려하기 때문에 더 외롭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는 게 더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1년 뒤, 나는 방송계 인사들과 함께하는 ‘길벗’이라는 명상 수행 프로그램 모임에 가입했다. 매일 수행을 하는 것이 쉽진 않았다. 아침마다 명상을 하고 글을 읽고 명상 일지를 적는 데 30분 이상 걸린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회복하고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남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토회에서 하는 ‘빈 그릇 운동’의 홍보대사도 맡게 됐다. 빈 그릇 운동은 음식물을 남기지 않음으로써 환경을 보호하고 식량자원을 절약하자는 운동이다. 여기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스님과 만날 기회도 생겼다. 수행을 시작한 지 200일째 되는 날, 우연히 홍보대사로서의 활동이 있었다. 스님에게 자랑스레 “저 200일이나 했어요” 하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200일이란 시간은 어디 명함도 못 내밀 시간인데 스님은 그저 ‘허허’ 웃으셨다. 그리고 2년이 된 뒤 다시 스님을 만났을 때 다시 “저 2년 됐어요”라고 자랑했다. 스님은 “그래서 그렇게 예뻐졌구나” 하며 또 ‘허허’ 웃으셨다.

최근 스님의 가을 법회에 참석해 법문을 들었다. 주제는 ‘왜 행복해지기 위해 선택한 것들로 우리는 고통 받는가’였다. 스님은 사람의 모든 행동은 계산돼 있다고 말씀하셨다. 다 자기가 선택한 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처음의 마음과 나중의 마음이 달라져서 문제다. 배가 고파서 처음엔 막 밥을 먹다가도 너무 많이 먹고 나선 ‘내가 왜 이렇게 많이 먹었지’ 하며 부른 배를 움켜잡고 후회한다. 그러나 밥을 많이 먹은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사람들은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지’ 하며 남을 탓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운명을 한탄하며 전생을 저주한다. 그러나 나쁜 줄 알면서도 계속 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나는 내가 선택한 모든 일의 주체인 것이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끝까지 내가 책임지며 살아야겠다. 선택을 후회하지 말고, 잘 해결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생겨났다.

스님은 항상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고민은 너무나 소소한 것들이라 말씀하신다. 못 먹고 못 입고 공부를 못하는 사람도 많은데 잘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잘살지 못하고, 남을 제 멋대로 하고 싶어 해 고통 받는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그럴 것이다. “누가 옳은 말인 줄 몰라? 그걸 실천하면 성인의 삶이지”라고.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마음공부를 하지 않으면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성인도 노력하면 되는 것이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친구들만 해도 벌써 “종옥아, 너 우리랑 너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니?” 한다. 나의 삶의 방향 자체가 달라져 버렸다. 더 좋은 차, 더 예쁜 옷에 나는 이제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겨우 2년 동안 마음공부를 한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스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아주 작은 실체를 깨달았을 뿐이다. 최근 영화 ‘허브’의 촬영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나는 하루도 수행을 거르지 않았다. 2년을 하니 이렇게 좋아졌는데 스님은 “3년을 하면 자기 실체가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내년에는 또 어떤 나의 모습이 보이게 될까. 양파 껍질을 벗기듯, 벗겨도 벗겨도 또 새로운 것이 나타나는 ‘나’라는 사람을 발견하는 재미를 법륜 스님이 가르쳐 주셨다.

구술정리=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 법륜 스님의 눈에 비친 ‘기독교 신자’ 배종옥 씨

정토회 지도법사이며 평화재단 이사장인 법륜 스님은 1988년 정토회를 설립한 후 환경운동을 주도해 왔으며 1993년부터 국제기아 질병 문맹퇴치 민간기구인 한국JTS(Join Together Society)의 이사장을 맡아 북한 어린이들에게 나눔의 손길을 펼쳐 왔다. 2002년에는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았다.

배종옥 씨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꼽았다는 말에 스님은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마음 수행 프로그램인 ‘깨달음의 장’에서는 서로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게 하려고 처음에 자기소개를 하지 않습니다. 저는 TV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아 종옥 씨가 배우인지도 몰랐죠. 그러다가 마지막에 소개할 때 말하는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스님은 배 씨가 모임에 나올 때 몇 번 마주쳤지만 개인적으로 만나 자세한 얘기를 나눈 적은 없다면서 “이번 기회에 차라도 한잔 대접해야겠다”며 허허 웃었다.

“유명인은 대중과 섞이지 않으려고 하잖아요.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하니까. 그런데 종옥 씨는 연예인이 아니라 보통 사람으로 나와 공부하고 봉사하고 다른 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지요. 저 역시 그분을 챙겨 주거나 대우해 주지 않았습니다.”

노희경 씨도 유명 드라마작가인 줄 몰랐다는 스님은 “나중에야 알고 ‘저렇게 겸손하니까 좋은 작품을 쓰는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음공부로 인생이 바뀌었다는 배 씨의 말에 대해서는 “사실은 그 전에 그렇게 변할 수 있는 보석 같은 마음이 존재했던 것이고, 깨달음의 장은 그 계기가 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배 씨가 기독교 신자인 것을 알고 있다. 개종을 권하고 싶진 않느냐는 질문에 “어휴, 개종을 왜 권하느냐. 일본 사람과 친구가 되려고 그를 한국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저는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교회와 성당을 방문해 축하를 했습니다. 여기(정토회)에 들어와 사는 사람 중에도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 있지만 전혀 그런 말은 꺼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의를 하면 ‘신중히 하라’고 하죠.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지 마음속에 어떤 분을 모시는지가 왜 문제가 되겠습니까. 마음공부를 하러 와도 절을 시키거나 불교 교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이 지금까지 생각해 온 게 과연 옳은가 돌이켜 볼 장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자라면 자기식 기독교에서 벗어나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지요. 종교 자체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