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상 안보 문제가 정쟁(政爭)의 대상이 됐던 대표적 사례는 조선 선조 시절 ‘10만 양병론(養兵論)’을 둘러싼 논쟁일 것이다. 1582년 병조판서(국방장관)에 오른 율곡 이이 선생은 “준비하지 않으면 10년 안에 땅이 무너지는 화(禍)가 있을 것”이라면서 병력 10만 명을 미리 길러 둬야 한다고 간언했다. 그러나 치열한 당파 싸움 속에서 무시되고 말았다. 도승지(왕의 비서실장) 유성룡은 “평화 시의 양병은 호랑이를 길러 우환을 남기는 것과 같다(養虎遺患)”는 논리로 깔아뭉갰다.
▷꼭 10년 뒤인 1592년 임진왜란이 터졌다. 율곡의 말이 들어맞은 것이다. 반대론자들은 국제정세에 어두운데 다가 정쟁에만 몰두한 탓에 위기를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집권 이후 한미동맹의 틈새만 벌려 놓은 이 정권과 자칭 ‘진보세력’의 어리석음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안보의 초당파성을 겨냥해 새해 벽두에 던진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의 ‘안보 정쟁화 중지론’이 또 논란을 부를 것 같다.
▷송 장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보 문제는 정쟁화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정쟁을 자초한 사람들이 과연 누구인가. 그동안의 한미 갈등은 바람직한 관계로 나가기 위한 불가피한 진통 정도였는가, 갈등에 대한 (언론의) 과도한 해석 때문에 문제가 커진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송 장관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실익도 없이 미국을 자극한 대통령만 아니었어도 한미관계가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보에 대한 각계의 우려와 충고를 ‘정쟁거리’로 봐선 안 된다. 이 정권이 오히려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환수 추진, 북핵 위험 경시 발언, 군(軍) 원로들의 충언 무시, 북의 6·25남침을 왜곡하는 내전론(內戰論), 군 복무 단축 검토 및 군 비하 발언 등으로 끊임없이 정쟁을 유발하지 않았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외모가 볼품없다며 침략이 없을 것이라고 했던 통신사(通信使)의 말에 솔깃했던 선조의 어리석음이 반복돼선 안 된다.
육 정 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