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은 어렵습니다.” 은행원은 냉정하게 말했다.
“오늘까진 된다더니….” 상담하던 정모(31) 씨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2일 오전 서울 성북구 길음동 국민은행 영업점.
정 씨는 국민은행이 3일부터 소득수준에 따라 대출을 제한하는 총부채상환비율(DTI) 적용범위를 전국의 모든 주택으로 확대한다는 소식을 듣고 은행 창구를 찾았지만 허사였다. 은행 측이 신규 대출신청을 받을 수 없다고 한 때문이다.》
국민은행에 이어 신한 우리 하나은행 등도 DTI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실수요자들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당장 주택을 마련하려는 실수요자들은 자금조달에 비상이 걸렸고, 이미 대출을 쓴 1가구 1주택자들은 금리인상으로 이자부담이 크게 늘고 있다.
가계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은행의 부실규모가 빠른 속도로 증가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 신규 대출 길 더 좁아져
국민은행 각 영업점은 이날 아침부터 DTI와 관련한 고객들의 전화 문의나 방문 상담에 일일이 응대하느라 애를 먹었다.
국민은행 김정진 도봉구 영업점 팀장은 “DTI 규제를 하지 않는 다른 은행에서는 종전처럼 대출이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은행의 각 영업점은 이날 지난해 12월 중순 이전 대출 상담을 한 고객에게만 DTI 규제를 적용하지 않은 대출계약을 했다.
국민은행 성북구 영업점 관계자는 “DTI 규제가 언제 풀릴지 묻는 고객이 많았지만, 은행 직원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라고 귀띔했다.
국민은행 천성환 경기 용인시 용인지점 팀장은 “주택대출이 힘들어진 사람에게 금리가 다소 비싸더라도 신용대출을 받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고 했다.
○ 1주택자도 이자 부담 ‘눈 덩이’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잇달아 올리면서 이미 주택대출을 받은 1가구 1주택자들이 이자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직장인 나모(36) 씨는 2005년 8월 서울 마포구 상암동 32평형 아파트를 사면서 신한은행에서 1억5000만 원을 연 3.91%(3개월 변동)에 빌렸다.
당초 계약대로라면 매달 48만9000원(연간 586만5000원) 정도만 내면 된다.
하지만 지금은 연 5.84%의 금리를 적용받고 있다. 월이자 부담액은 73만 원(연간 876만 원)으로 처음 대출받을 때보다 24만1000원(연 289만5000원) 늘었다.
은행들이 대출금리 기준으로 삼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오르면서 기존 대출자의 이자 부담도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들이 최근 인상된 지급준비율을 맞추기 위해 CD 발행을 늘리면서 CD금리도 많이 올랐다.
○ 획일적 규제는 위험
금융 전문가들은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해 실수요와 투기수요를 가리지 않고 신규 대출을 막으면 부동산 거품이 급격히 빠져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다(多)주택자의 매물을 유도한다고 하면서 정작 매물을 사려는 실수요자의 자금 조달을 어렵게 하는 정책은 모순이라고 했다.
전체 대출 중 변동금리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대출금리를 획일적으로 올리는 것도 문제다.
건국대 고성수(경제학) 교수는 “기존 대출자의 부담이 크게 늘어 전체 연체 규모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지난해 7월 말 기준 주택대출 가운데 변동금리 대출은 전체 대출의 97.5%에 이른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전문가는 “연구 결과 대출금리를 대폭 올리면 은행의 건전성이 악화된다는 점이 입증됐다”고 지적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