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 간판 배우 박정자(64·왼쪽) 손숙(62) 씨가 15년 만에 다시 만나 ‘신의 아그네스’를 무대에 올린다.
9일 서울 중구 정동극장에서 시작하는 ‘신의 아그네스’에서 박 씨는 원장 수녀 역을, 손 씨는 정신과 의사 리빙스턴 박사를 맡아 함께 출연한다. 두 사람이 이 작품에 출연하는 것은 1992년 이후 처음. 40여 년간 연기의 길을 걸어 온 연극계 ‘대표 선수’끼리 만났는데 불꽃 튀는 라이벌 의식은 없을까?
“아이고, 이제 그런 세월은 지났죠. 지금도 누가 대사를 먼저 다 외웠다고 하면 스트레스를 받지만(웃음). 물론 15년 전에야 ‘내가 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이 없었다고 할 순 없지만 이제는 실수를 해도 서로 잘 받아넘겨 줄 거라는 신뢰가 생겨 여유 있는 연기를 펼칠 수 있어 좋아요.”(손)
“원장 수녀와 리빙스턴 박사는 팽팽하게 긴장하며 대립하는 역이지요. 그런데 무대에서 팽팽한 갈등을 빚어내기 위해서는 관객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오히려 우리 두 사람은 거꾸로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해야 해요. 그래야 연기가 살거든요. 서로 내 역만 잘하려고 해서는 좋은 앙상블을 이룰 수 없죠.”(박)
1983년 국내에서 초연된 ‘신의 아그네스’는 신인이던 윤석화 씨를 단숨에 스타로 만들었던 히트작. 초연 당시 ‘신의 아그네스’는 5개월 만에 15만 명이 넘는 관객을 기록한 것을 비롯해 최장기 공연 기록(10개월)도 세웠다.
‘신의 아그네스’는 ‘젊은 수녀가 남몰래 낳은 아기를 탯줄로 목 졸라 죽인 사건’을 소재로 신을 부정하는 정신과 여의사와 원장 수녀 간의 인간성과 신성(神性)의 갈등을 다룬 작품. 이 과정에서 세 주인공의 과거가 하나씩 벗겨지는 형식이다. 특별한 무대 세트도 없이 연기에만 의존해야 하는 작품이어서 배우들의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손 씨는 “대한민국에서 원장 수녀 역을 박 선생님보다 더 잘할 사람은 없다”고 했고, 박 씨는 “15년 만에 다시 만나 연습해 보니 나나 손숙 씨나 더 능구렁이가 된 것 같다”며 웃었다.
윤석화 이후 신애라, 김혜수 씨 등 스타들이 거쳐 간 ‘아그네스’ 역에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기생 ‘청향’을 맡았던 신인 탤런트 전예서 씨가 캐스팅돼 두 선배를 상대로 연기를 펼친다. 연출은 여성 연출가 박정희 씨가 맡았다. 2월 7일까지. 02-3272-2334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