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동해의 명칭을 ‘평화의 바다’로 바꾸자고 일본에 비공식 제안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계기로 갖게 된 한일정상회담에서 일본 측에 동해의 명칭을 ‘평화의 바다’ 또는 ‘우의의 바다’로 부르는 방안이 어떠냐는 의견을 비공식적으로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8일 “노 대통령이 한일 간의 현안을 대국적 차원에서 풀어나가기 위한 인식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당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총리에게 비유적으로 동해를 ‘평화의 바다’ 또는 ‘우의의 바다’로 불렀으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이것은 공식 의제는 아니었다"며 "일본 측에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그 이후로 한일간에 동해 명칭을 ‘평화의 바다’로 바꾸는 문제에 대해 전혀 논의된 바도 없고, 현재 논의하고 있지도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동해 명칭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면서 "한일 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기 위한 여러 노력의 예시 중 하나로 그 같은 언급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 발언이 즉흥적으로 함부로 나온 것은 아니다"며 "그 이전에 참모 회의에서 여러 의견들이 브레인 스토밍 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 수준으로 ‘평화의 바다’ 얘기가 거론된 적이 있었다"고 전하면서 "하지만 호칭 변화 자체가 타깃이 아니라 한일관계를 대범하게 풀어보자는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기 위해 예로 든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언급은 동해 명칭을 한국은 ‘East Sea(동해)’로, 일본은 ‘Sea of Japan(일본해)’으로 부르고 있는 상황에서 명칭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양국간 우호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 갈등해소를 위한 접점 모색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동북아 국가들이 역내 평화와 공동의 번영을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하고 협력을 위한 질서를 갖춰야 하는데, 일본이 그러지 못하니까 해결 모색 차원에서 하신 말씀"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이 같은 비공식적이기는 하지만 다소 ‘돌출적인’ 제안은 동해 명칭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입장은 물론 시민사회를 포함한 각계의 동해 이름 찾기 노력이 지속되어 온 현실을 감안할 때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한국 정부는 1991년 이후 ‘동해’ 표기 주장을 국제사회에 공식화하고 있으며, 단 양국간 명칭에 대한 분쟁이 있을 경우 해당국의 합의가 있을 때까지는 병기하도록 하는 유엔의 권고에 따라 일단은 병기할 수도 있다는 공식 입장을 유지해 오고 있다.
또 반크를 축으로 한 일부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도 역사적, 법리적 당위성을 근거로 동해 표기를 국제사회에 꾸준히 주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 같은 움직임과 다른 제안을 한 것은 여론의 흐름은 물론 정부의 공식 입장과도 배치되지 않느냐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이 공식적인 제의가 아니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을 위해 일본 측의 자세 변화를 촉구하기 위한 하나의 예로 들었던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공식적 제안도 아니며 양국 정부간에 협의가 진행된 바도 없다"고 말했다.
일본측이 노 대통령의 비공식적 제안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은 예상치 못한 제안이기도 하지만, 실리적으로 일본이 얻을 게 없다는 판단도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국제사회의 97% 가량은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어, 국제사회의 인식이 일본 측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굳이 입장을 ‘평화의 바다’로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실제로 일본 정부는 동해 명칭과 관련해 분쟁이 없다는 논리 하에 동해 명칭은 유엔 권고의 대상이 아님을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다.
성하운기자 haw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