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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평화의 바다’ 제의, 가볍고 미숙했다

입력 | 2007-01-08 23:24:00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아베 신조 총리에게 동해를 ‘평화의 바다(海)’ 또는 ‘우의의 바다’로 명칭을 바꿀 수도 있지 않느냐고 제의했다고 한다. 청와대 측은 논란이 불거지자 어제 “공식적으로 제의한 게 아니고, 한일 간 현안들을 대국적 차원에서 풀기 위해서는 인식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비유적으로,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렇다 해도 문제의 중대성에 비춰 볼 때 무책임하고 경솔했다는 판단을 버릴 수 없다.

이런 얘기가 나오게 된 과정부터 납득이 안 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실무선과) 협의했고, 그 이전에 내부 비공개회의 때 그런 말씀을 더러 했다. 가볍게 논의된 적이 있다”고 했지만, 이 문제가 청와대 참모들과의 ‘가벼운 검토’만으로 불쑥 꺼낼 사안인가.

동해는 세계지도의 97%가 ‘일본해’로 표기되고 있지만 사실상 일제 강점기에 그 명칭을 강탈당한 것이다. 따라서 명칭 변경의 옳고 그름을 떠나 관련 부처 및 전문가그룹과 깊이 있는 논의를 거치고 국민적 공감대를 먼저 확보하는 게 바른 순서다.

일본이 쉽게 이를 받아들일 리도 만무하다. 이 점을 몰랐거나, 알고도 먼저 꺼냈다면 외교적 상상력과 전략의 부재(不在)를 보여 주는 아마추어리즘의 극치다. 중대한 역사성과 상징성을 갖는 동해 표기 문제를 마치 우리 과거사의 한 대목을 정리하듯 가볍게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느닷없는 동해 명칭 변경 제의는 그동안 국제사회를 상대로 동해 표기를 위해 애써 온 민간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고, 1992년부터 동해 표기를 주장해 온 우리 정부의 공식 방침과도 배치된다. 앞으로 여러 대일(對日)협상에서 일본에 악용될 소지도 크다.

동해 명칭 교체는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독도 영유권과 동해 해저 지명, 배타적 경제수역(EEZ) 경계와도 직간접으로 연관된 문제이기도 하다. 한일관계 정상화에 걸림돌이 되는 이런 현안들을 마냥 방치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즉흥적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실익(實益)은 물론이고 역사성과 국민감정 등을 감안해 충분한 논의를 통해 풀어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