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말없이 조용한 식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반(半)지하 전셋집에서 꺾인 손가락으로 하루에 10시간씩 피아노를 울려댔지만 제 나름의 논리로 시끄럽게 굴러가는 세상은 그를 듣지 못했습니다. 직접 만든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며 “나도 여기에 존재한다”라고 외쳤지만 금방 소음에 묻혔습니다.
본보가 4일과 8일 소개한 뇌성마비 피아니스트 김경민(26) 씨 얘기입니다.
▽본보 4일자 B8면·8일자 A30면 참조▽
▶ [UCC 스타]‘월광’ 연주 뇌성마비 피아니스트 김경민 씨
▶ UCC스타 뇌성마비 김경민씨 콘서트 계약…연주초청도 잇따라
김 씨는 한 달 전만 해도 ‘손수제작물(UCC) 스타’였습니다. 누리꾼들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월광 1악장을 연주하는 그를 보며 감동했고, 기뻐했으며, 가슴 아파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거기까지만 허락했습니다. 자주 그래 왔듯(어쩌면 인터넷의 특성인지도 모르지만) 감동은 길가에 파인 웅덩이의 물결처럼 그 안에서만 맴돌다 사라질 뿐이었습니다.
김 씨에게 처음 피아노를 가르쳤던 지성숙(38) 선생님은 김 씨를 위한 콘서트를 마련하느라 동분서주했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았습니다. 오프라인에서는 누구도 선뜻 뇌성마비 1급 장애인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콘서트는 김 씨를 ‘장애인 스타’로 만들려는 ‘기획물’이 아닙니다. 등이 굽어 피아노 앞에 앉아 있기도 힘든 그는 동료 장애우들에게 베토벤의 작품을 연주하기까지의 과정을 전하고 “당신들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기 위해 콘서트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김 씨와 지 선생님이 지쳐 가고 있을 무렵 본보는 두 사람의 소식을 접했습니다. 기사를 쓰면서도 ‘혹시 별 반응이 없으면 더 힘들어 할 수도 있을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기우(杞憂)였습니다. 세상이 응답하기 시작했습니다. 김 씨는 경기 용인축협의 전액 후원으로 3월 17일 단독 콘서트를 엽니다. 경기 안산시와 서울 강남구청도 김 씨를 돕기로 했습니다.
8일 통화한 지 선생님은 콘서트 준비에 목이 쉬었더군요. 그래도 행복하답니다. 참 다행입니다. 말없이 조용한 식물에 촉촉이 비가 내렸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살 만한 세상입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