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냉전 중 봉쇄정책 주창자로 ‘일본이 대소(對蘇) 봉쇄의 최전선이 돼야 한다’던 미국의 조지 캐넌은 더글러스 맥아더 일본점령군사령관을 못마땅해 했다. 맥아더가 “일본의 역할은 태평양의 스위스가 되는 것”이라며 무장해제(대일강화조약)를 서둘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6·25전쟁이 터져 일본에서 미 육군 4개 사단을 모두 빼낼 수밖에 없게 되자 맥아더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내각에 7만5000명의 국가경찰예비대 창설을 지시한다. 자위대의 모체다.
▷자위대는 1954년 7월 방위청설치법과 자위대법의 공표로 법적 체제를 갖추게 된다. 그 1년 전 자유당 당수인 요시다 총리와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 개진당 당수는 이른바 ‘요시다-시게미쓰 합의문’을 전격 발표했다. ‘주둔군의 점진적 감축에 즉시 대응하는 동시에 국력에 걸맞은 장기 방위계획을 수립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개진당은 군대 관리 주체가 총리실 밖에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독립된 성(省), 즉 국방성을 두자고 했고 자유당은 ‘군대 색깔을 띠어선 안 된다’며 ‘성 승격’에 반대했다. 군대냐 아니냐 하는 논란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 지난해 말 일본 의회가 법을 개정함에 따라 9일 방위청이 방위성으로 격상돼 현판을 바꾸었다. ‘우리는 섬나라이므로 국토의 의미가 매우 명료하다. 자위의 경계가 섬을 넘어서면 안 된다’던 자위대의 임무 범위와 역할도 일본 열도를 뛰어넘게 됐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전후(戰後)체제 탈각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요컨대 62년 전 패전(敗戰)의 족쇄를 자르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얘기다.
▷일본의 새해는 이렇게 시작됐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엔 아소 다로(麻生太郞) 외상을 인도에 보내는 것으로 한 해를 열었다. 중국의 부상(浮上)에 공동 대응할 전략대화 채널 구축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한국의 2007년은 임기 말 대통령의 ‘국민 놀라게 하기’로 시작됐다. 깜짝쇼 같은 개헌 제안에 누리꾼 사이에서는 ‘하여튼 끝까지 흔드네’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