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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反美상징 오르테가의 ‘우향우’

입력 | 2007-01-11 03:00:00


《“오르테가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드리며 함께 협력해 일하고 싶습니다.”(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1980년대 반소매 전투복 차림에 콧수염을 길렀던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 그의 이미지는 미국의 강경우파에 혐오의 대상이었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일부 인사들은 오르테가 정부에 대항하는 콘트라 반군 지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역시 적이었던 이란에 비밀리에 무기를 판매했다. 이어 대통령에 오른 조지 부시(현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 대통령은 1989년 중-미 정상회담에서 오르테가 대통령을 “가든파티장의 초대받지 않은 동물”이라고 불렀다.》

바로 그 오르테가가 니카라과 대통령으로 10일 다시 취임했다. 1990년 대통령 선거 패배로 물러난 뒤 17년 만의 복귀다.

그러나 이번에 미국과 니카라과 간에 오가는 기류는 1980년대와 전혀 다르다. 부시 대통령은 8일 직접 전화를 걸어 취임을 축하하면서 협력 관계를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오르테가 대통령도 과거사를 제쳐 두고 중남미 국가들의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 힘쓰겠다고 화답했다.

오르테가 대통령은 미 행정부 경축사절로 참석한 마이클 레빗 보건장관에게 “귀하의 방문이 양국 간 잦은 교류의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감사를 표했다.

오르테가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승리한 뒤 “1980년대 행한 실수들 즉, 농장소유권 박탈과 같은 오류들로부터 교훈을 배웠다. 사유재산권을 존중할 것이다. 우리는 많이 성숙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와 평화, 화해다”라고 수차례 강조해 왔다.

하이메 모랄레스 니카라과 부통령도 9일 로이터통신과의 회견에서 “새 니카라과 정부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같은 급진적인 좌파 경제정책을 답습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유재산과 기업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시장경제를 전적으로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랄레스 부통령은 콘트라 반군 지도자 출신이지만 오랜 정적인 오르테가 후보와 화해하고 러닝메이트로 출마했다.

그러나 외견상의 변화 조짐이 실질적 화해와 협력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10일 취임식에는 차베스 대통령과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15일 취임하는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 당선자를 필두로 중남미권 좌파 지도자들이 많이 참석했다.

미국 내에선 오르테가 대통령의 권력 복귀가 중남미 좌파 세력권에 더욱 힘을 실어줄 것이란 우려가 여전하다. 사실 미 행정부는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오르테가 후보를 낙선시켜야 한다고 니카라과 국민에게 공개 호소한 바 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美 짝사랑’ 천수이볜의 굴욕▼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이 중국의 강력한 주문을 받은 미국의 냉대로 한 나라의 정상으로서 대우받지 못하는 설움을 또 겪었다.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신임 대통령의 취임식 참석을 위해 대만을 출발한 천 총통은 8일 오후(현지 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지만 보루이광(薄瑞光) 미국 재대만협회(AIT) 주석과 리다웨이(李大維) 주미 대만대표처장의 영접만 받았을 뿐 미국 측 관리는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천 총통은 샌프란시스코 체류 16시간 동안 호텔 안에서 국가정상으로서가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교포 대표를 면담하고 일부 대만 교포와 식사를 했을 뿐 호텔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교포와의 만찬이나 강연도 모두 금지됐다. 그가 호텔에 머무는 동안 그를 찾은 미국 정부나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시 관계자는 아무도 없었다. 유일하게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낸시 펠로시(66·여) 미 하원의장이 그에게 환영의 표시로 전화를 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이 같은 냉대는 2000년 그가 처음 미국을 경유했을 때도 비슷했다. 지난해 5월엔 미국이 본토를 경유하지 못하도록 해 양국 간에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미국의 대우는 이처럼 싸늘했지만 천 총통은 미국이 1박을 허용해 미국 본토를 다시 밟은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것처럼 보였다고 대만 일간지 롄허(聯合)보가 10일 전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