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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08년 美그랜드캐니언 국립기념지 지정

입력 | 2007-01-11 03:00:00


권투와 레슬링선수였고 등산과 사냥, 탐험을 즐긴 야외활동가였으며 군인이자 박물학자, 역사가, 수필가이기도 했던….

미국인이라면 금세 시어도어 루스벨트 26대 대통령(재임기간 1901∼1909)을 떠올릴 것이다. 다채로운 이력만큼이나 정력과 남성미가 넘쳤던 그는 명실 공히 ‘카우보이 대통령’이었다.

젊은 시절 아내가 아이를 낳다 숨을 거두자 그는 돌연 서부로 이주해 목장을 차리고 무법자들과 싸우며 사냥을 다녔다. 해군부 차관보 재직 때는 스페인과의 전쟁이 터지자 사표를 내고 의용기병대 ‘러프 라이더’를 조직해 쿠바에서 영웅적인 전투를 벌였다.

뉴욕의 부자 집안 출신이었던 루스벨트는 이런 카우보이 경력을 뉴욕 경찰청장, 뉴욕 주지사, 부통령, 대통령에 이르는 정치적 성장에 십분 활용했다. 양가죽바지 차림에 윈체스터 라이플과 콜트 권총을 든 사진은 그의 단골 메뉴였다.

그의 카우보이 이미지는 밀어붙이기 식 일처리와 맞물려 더욱 선명히 부각됐다. 환경운동가로서 그의 명성을 높인 그랜드캐니언 보전은 대표적인 사례.

루스벨트는 1908년 1월 11일 애리조나 서북부의 광대한 협곡을 국립기념지(national monument)로 지정하며 “자연의 위대한 불가사의를 우리 후손 모두를 위한 명소로 보전하자”고 선언했다.

그랜드캐니언은 국립공원의 지위를 얻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국립공원 지정을 위해선 의회의 승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대통령의 권한이었던 국립기념지로 먼저 지정한 것. 그랜드캐니언의 국립공원 지정은 결국 1919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 때야 이뤄졌다.

루스벨트의 말년은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집권 말기엔 의회와 잇따른 충돌로 거센 논란을 일으켰고 1912년 대선 때는 공화당 경선에서 떨어지자 진보당을 만들어 출마했다 맥없이 민주당에 승리를 안겨 주기도 했다.

하지만 루스벨트의 카우보이 정치는 1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많은 후세 대통령의 모델이 돼 왔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그의 열성 팬. 그는 취임 얼마 뒤 루스벨트의 전기 ‘국왕 시어도어(Theodore Rex)’ 읽기를 마쳤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부드럽게 말하되 큰 채찍을 준비하라”는 루스벨트의 가르침은 부시 행정부의 외교 노선 지침이 됐다.

부시 대통령의 카우보이 흉내는 비평가들의 조롱을 사기도 한다. 그는 종종 크로퍼드목장에서 기계톱으로 나무를 자르는 모습을 보여 준다. 하지만 말을 타거나 도끼질하는 장면은 볼 수 없다. 사실상 그런 일들은 부시 대통령에겐 너무 힘들고 위험할 것 같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