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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현 “염치없는 家長 역할에 나도 아버진데… 뜨끔”

입력 | 2007-01-12 03:00:00

지난해 최대 화제작 ‘경숙이, 경숙 아버지’로 3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배우 조재현. 김미옥 기자


“어∼이! 경숙 아버지. 잘돼 가? 요즘 사진 많이 걸려 있데?”

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춥다던 날 ‘빈대떡 먹으러’ 서울 대학로에서 예지동 광장시장까지 걸어가던 ‘경숙 아버지’를 알아본 연극인들이 오가며 인사를 건넸다.

아닌 게 아니라 걷다 보니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경숙이, 경숙 아버지’ 포스터 속에서 조재현은 혼자 헤벌쭉 웃고 있었다.

배우 조재현(42)이 대학로 연극무대로 돌아왔다. 2004년 ‘에쿠우스’ 이후 3년 만이다. TV나 영화에서 한번 뜨고 나면 좀처럼 힘든 연극으로 돌아오지 않는데 무대에 돌아온 그는 “내가 생각하는 배우란 편해서도 안 되고, 자신에게 관대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영화나 TV가 한껏 옷을 차려입고 하는 연기라면 연극은 발가벗고 하는 연기같아요. 부담스럽기도 하죠. 하지만 부담이라는 게 결국 긴장감인데 전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긴장감이 좋습니다.”

그가 택한 작품은 동아연극상 4관왕(작품상, 희곡상, 연기상, 신인연기상)을 비롯해 지난해 각종 연극상을 휩쓸었던 연출가 박근형 씨의 ‘경숙이, 경숙 아버지’. 부재(不在)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코믹하면서도 한편으론 가슴 짠하게 그린 작품이다. 그가 맡은 ‘경숙 아버지’는 부초(浮草)처럼 언제나, 어디론가 떠도는 무책임한 아버지다.

아내와 딸을 버려두고 혼자만 피란을 떠나려는 아버지에게 어린 경숙이는 물기 어린 목소리로 매달린다. “아배요, 우리도 같이 가야지예. 그게 식구 아닌교.”

“깝깝한 년. 그거야 평상시 아무 일 없을 때 그라는 기고. 지금은 전시 아이가. 전시에 식구 챙기다 총 맞아 내 죽으면 누가 책임질끼고.”

매정한 아버지는 뻔뻔하기도 하다. “니는 어매가 옆에 안 있나. 너희는 둘! 내는 쏠로! 진정 외로운 사람은 내다!”

처자식은 안 챙겨도 장구채는 챙겨서 떠나는 아버지, “내도 꿈이 있다. 꿈을 펼치러 간다”며 평생 자신만의 장단을 두드리며 살아가는 경숙 아버지에 대해 조재현은 “어찌 보면 솔직하고, 용기 있고, 나름대로 진실해 슬픔도 느껴지는 사람”이라며 “관객들의 동정을 얻어 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경숙 아버지에게서 얼핏 자신의 모습도 본다. “강도(强度)는 달라도 배우에겐 경숙 아버지 같은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자기 꿈(연기)을 위해 집도 제대로 못 돌보고…. 우리 애들도 내 얼굴 보기 힘든 때가 많았으니까.”

실생활에서 그는 어떤 아버지일까.

그는 “아들 녀석(쇼트트랙 선수 조수훈)이 며칠 전 끝난 쇼트트랙 전국회장배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춘천까지 가서 경기를 봤다는 그는 기자가 이 대회에 대해 잘 모르는 듯하자, “대학부에서 안현수 선수가 금메달 땄고, 우리 애는 고등부에서 땄다”며 ‘안현수’를 끌어들여 넌지시 대회 수준을 일러 준다.

“이제 고교 3학년이 되지만 이미 4년 장학금 받고 대학도 확정됐다”고 한 번 더 자랑을 덧붙이는 그의 모습 위로 ‘경숙 아버지’가 다시 겹쳐진다.

연극의 마지막 대목. 대학을 졸업하는 경숙이에게 소식도 없던 경숙 아버지가 불쑥 찾아와 구두를 내민다. “사회 첫발을 내디딜라면 신발이 있어야제….”

25일∼3월 25일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02-766-3390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