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의 충격이 한국을 강타하고 있던 1998년 1월 12일. 홍콩발 뉴스가 하나 날아든다.
‘홍콩 최대 금융회사 페레그린, 파산 신청.’ 한국 금융계는 충격에 빠졌다. 국내 금융회사 상당수가 홍콩 현지법인을 통해 페레그린과 파생상품 거래를 해 온 터. 파산으로 인한 거래 불이행으로 큰 손실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 미친 영향은 ‘새 발의 피’였다. 페레그린의 파산은 도미노처럼 아시아와 유럽 증시를 차례로 무너뜨렸다.
이날 홍콩 항셍지수가 773.58포인트(8.7%) 폭락한 것을 비롯해 싱가포르(8.7%), 일본(2.2%), 대만(4.7%), 말레이시아(2.9%) 등 주요 아시아 증시가 동반 추락했다. 유럽 증시의 주가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당시 동남아 통화가치가 급락하던 시점에서 아시아의 금융 중심지인 홍콩에서 가장 큰 투자은행이 파산함으로써 아시아 금융 위기를 더욱 증폭시킨 계기가 됐다.
페레그린(Peregrine)은 ‘송골매’라는 뜻.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비상하던 페레그린의 추락은 드라마틱하다. 설립 10년 만에 홍콩 최고의 기업이 됐다가 하루아침에 망했으니 사연이 있을 수밖에 없다.
1988년 영국 태생의 필립 토스 회장이 창립한 페레그린은 한국계 미국인 앙드레 리(이석진)를 만나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았다.
국제변호사인 한국인 아버지와 캐나다계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앙드레 리는 훤칠한 키, 영화배우같이 잘생긴 외모, 놀라운 투자 실력으로 ‘신비의 투자자’로 통했다.
그는 다국적 증권사 리먼브러더스 홍콩법인에서 채권 브로커로 두각을 나타내다 1994년 페레그린에 스카우트된 뒤 한때 회사 수입의 3분의 1을 담당할 정도로 막대한 이익을 회사에 안겨 줬다.
위험성은 있지만 국제 금리보다 다소 높은 이자를 주는 동남아시아 기업들의 채권을 집중적으로 매입하는 전략을 썼다. 하지만 그의 무분별한 채권 매입은 결국 페레그린 몰락의 빌미가 됐다. 동남아 금융 위기로 부실채권이 늘어나면서 결정적인 피해를 안겨 준 것이다.
1993년 자산 가치만 5조3000억 원일 정도로 위세가 당당했던 페레그린의 몰락은 초고속 성장을 하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상당수 아시아 국가의 운명과 궤를 같이한 셈이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