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서 뱃길로 한 시간이면 욕지도에 닿는다. 일주도로 해안에서 만나는 삼여도. 왼쪽 산등성 뒤로 욕지도의 동쪽 끝 망대봉 산자락이 보인다. 통영=조성하 여행전문기자
먹음직한 통영 생굴.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하큳는 통영굴은 지금이 제철로 현지의 소매가격은 kg당 6000원 선. 통영=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욕지(欲知)라는 섬은 이름부터 사람을 궁금케 한다.
굳이 토를 달자면 ‘알고자 하거든…’인데. 섬 이름에 뜬금없이 선문답에나 등장할 법한 접속사를 쓴 이유.
그것이 내내 궁금했는데 드디어 지난주 그 섬에 발을 디뎠다. 섬은 이름 그대로 ‘욕지’를 설(設)했다.
무엇이든 알고자 하거든 본성을 꿰뚫는 혜안을 가져야 할 것이고, 그러려면 무엇이든 정수를 관통해야 하는 법.
찾지 않고서야 어찌 그 섬을 알겠느냐는 평범한 진리를 섬은 가르쳐 주었다.
그러니 섬을 욕지하려는 이들. 이 기사부터 읽으시라.》
오전 10시 통영(산양면)의 삼덕항. 차량 29대와 승객 182명을 태운 카페리 욕지금룡호(대표 정규상)가 출항했다. 목적지는 욕지도의 동항. 평일 오전이라 배는 한산했다. 조타실에서 만난 배 주인 정 씨. 욕지도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20여 년째 통영과 욕지도를 오가는 배만 몰고 있다. 처음에는 여객선, 그 다음은 화물선, 지금은 카페리. 올 4월에는 이보다 훨씬 크고 좋은 배로 업그레이드 한다.
삼덕항을 빠져나오자 한려수도 푸른 바다가 열렸다. 정면으로 희끗희끗 보이는 크고 작은 섬 무리. 우도 연화도 상노대도 하노대도…. 그 뒤에 버티고 있는 큰 산, 아니 큰 섬이 욕지도다. 연화열도라 불리는 이 섬 집단에서 가장 크다. 통영에서 뱃길로 불과 55분 거리.
화창한 겨울 아침의 따사로운 햇볕. 욕지의 수도인 동항은 환히 빛났다. 순간 에게해(지중해의 일부) 크루즈여행길에 정박했던 그리스의 섬 로도스가 생각났다. 산 아래 동그랗게 둘러싸인 항구와 거기 정박한 수많은 고깃배, 그리고 항구 주변 산과 언덕자락을 하얗게 채색한 작은 집. 그 이미지가 동항의 아침풍경과 거의 일치했다.
주민 2400명이 한 개의 면을 이루고 사는 욕지도. 한때는 남해의 어업전진기지로 파시가 섰을 만큼 큰 어항이었다. 지금도 1200가구 가운데 500가구는 전업어민이고 반농반어민도 200가구나 된다.
“삼천포 남해 통영 사람들 모두 이 욕지바다로 먹고 사는 것 아닙니까.” 면사무소의 관광담당직원 김흥국 씨의 말. 이 지역 고기잡이가 두루 욕지도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얘기다. 실제로 통영 최남단 섬 욕지도는 큰 바다가 시작되는 곳.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고 다양한 종류의 고기가 산락을 위해 회유해 일년 사시사철 고기가 난다.
섬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동항. 그래봐야 식당 가게 몇 곳뿐인데 거기서 1970년대 체취가 느껴졌다. 골목 어귀의 ‘다방’ 간판이 그것. 육지고기와 바닷고기를 함께 내는 식당 역시 육지에서는 보기 힘들다. 특산물인 욕지고구마를 사려고 물었더니 대뜸 “고매(고구마)는 부식가게(슈퍼마켓)에 있다”고 답한다. 뱃길로 한 시간 거리지만 섬은 역시 섬답게 옛것이 올곧이 남아 있다. 그것이 섬의 매력임을 뭍사람은 안다.
그러나 면사무소에서 얻은 욕지도 관광지도만큼은 뭍 것에 못지않다. 지도와 정보가 조목조목 잘 정리돼 있다. 지도를 들고 섬 일주에 나섰다. 욕지도에 차를 가져가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일주도로 투어 때문이다. 31km 해안을 7할쯤 커버하는 21km의 일주도로. 내가 달려본 국내 섬 일주도로 가운데 울릉도를 빼고 최고라 평가할 만 했다.
바위산이 상단만 남긴 채 물에 잠긴 듯한 섬 욕지도. 아니 이 섬을 비롯한 한려수도의 섬들이 모두 이렇게 형성됐다. 들고 남이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이 게서 온 것임은 주지의 사실. 그런 섬의 산허리를 돌았으니 그 일주도로가 구절양장의 꼬부랑길임은 불문가지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비경 선경이 잇따르니 점입가경이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푸른작살’(고유지명)이라는 청사 언덕에서 조망하는 펜션 배경의 해안. 에게해의 그리스 섬 풍광을 꼭 닮았다. 솔끝에서 본 하노대도와 모도 등 작은 섬의 무리 진 풍경은 ‘바다의 정원’이라는 팔라우(괌섬 남쪽)를 쏙 빼닮았다. 이런 이국적인 바다 풍경. 국내에선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
섬 북단을 돌아 서쪽 해안으로 접어들자 섬과 바다 풍경은 토속으로 회귀한다. 몽돌밭 해변의 도동은 울릉도 도동항과 엇비슷했다. 옴폭 파인 계곡 지형의 만 깊숙이 자리 잡은 포구, 그 포구로 잦아드는 산기슭의 감귤 밭이 인상적이다. 노란 감귤은 아직도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이 귤이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세계적인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의 작품임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1968년의 일이다. 제주 것에 비해 산도와 과즙이 훨씬 진하다.
이어 한두 굽이 더 돌면 덕동. 여기에도 몽돌밭 해변이 펼쳐진다. 좀 더 가면 깎아지른 절벽의 돌출지형인 고래머리다. 뜻밖에도 ‘해수사우나’가 있었다. 청정바닷물을 끌어올려 쓰는데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풍치 좋은 목욕탕이 아닐까 싶다. 삼면으로 바다가 보이는 이곳에는 숙소(고래머리 관광농원)도 있다.
유동마을에 이르면 섬 남쪽에 다다른 것. 여기서 바다로 돌출한 지형 ‘양판구미’를 만난다. 멋진 풍광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하다. 여기서 길은 동쪽으로 고개를 오른다. 욕지도 최고의 비경 삼여도와 해맞이 전망대인 새천년공원은 이 길가에 있다. 삼여도는 송곳처럼 수면을 뚫고 불쑥 솟은 바위 두 개가 해안 쪽의 작은 바위를 감싼 형국. 공원을 지나면 도로는 개미허리처럼 잘록 들어간 개미목을 경유해 섬 동단의 망대봉 산악을 끼고 북쪽 해안을 달린다.
식당은 동항의 선착장 앞에 몇 개 있다. 수족관마다 고기가 가득하다. 눈에 띄는 것은 자리돔과 물메기. 욕지밤고매(고구마) 한 상자(5kg 1만 원)를 샀다. 지구상 가장 비싼 욕지고구마는 밤처럼 빡빡하고 단맛이 돈다. 논 없는 욕지도의 비탈 밭은 몽땅 고구마 밭. 뱃길 끊겨 곡식이 떨어지거나 춘궁기에 곳간이 바닥날 때 섬사람의 허기를 채워주던 고마운 고구마는 시집갈 때까지 쌀 서 말을 먹지 못했다는 욕지 처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통영=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푸른빛 도는 통영 생굴 한접시에
혈기방장 ♬∼ 원기회복 ♬∼
肉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