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방콕의 번화가 수쿰윗에 위치한 범룽랏 병원은 지난해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선정한 세계 10대 글로벌 병원 중 맨 처음으로 소개된 동남아 최대 규모의 병원이다. 연간 외래환자는 100만 명. 그 가운데 40만 명가량은 세계 154개국에서 찾아오는 외국 환자들이다. 의료산업의 국제화를 지향하는 한국에서도 해마다 많은 관계자가 이 병원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방문한다. 창설된 지 27년째인 이 병원이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급격한 성장의 비결은 뭘까.》
○ 저렴하고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
휴가차 태국에 왔다가 자동차 사고로 무릎을 다쳐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인 미국인 카신 스토프즈(68·여) 씨의 얼굴에선 불평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쉬운 수술이 아니었는데 결과가 너무 만족스럽습니다. 미국에 비해 불과 4분의 1의 비용으로 수술을 마쳤어요. 전담 의사가 2명인 데다 간호사가 머리를 빗겨 주고 손발톱까지 다듬어 주는 서비스도 미국에선 보지 못한 서비스입니다.”
이 병원은 특히 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지난해 이 병원을 찾은 미국인 환자는 5만5000명이었다. 미국에서 9만 달러(8380만 원)가량이 드는 목디스크 수술을 이곳에서는 불과 1만 달러(930만 원)에 받을 수 있다. 치료를 받은 뒤 관광지를 돌아보면서 경과를 지켜볼 수도 있다. 저렴한 의료 서비스와 지역적 특성을 결합한 ‘의료 관광’이 가능한 것이다. 항공료와 숙박비 등을 포함해도 전체 비용이 미국 치료비의 20∼25%에 지나지 않는다. 역시 의료관광으로 유명한 싱가포르에 비해서도 매우 저렴하다.
이 병원에는 26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 중 의사는 900명, 간호사는 700명이다. 의사 중 3분의 1은 미국 의사자격증 소지자들이며 높은 연봉으로 태국의 우수한 의사들을 지속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의료 관광’이 강점인 병원답게 10만 m²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병원과 554실의 입원병동은 5성급 호텔과 맞먹을 정도다. 병원 구내에는 수영장과 체력단련실을 갖춘 74실의 별관숙소와 51실의 고급아파트형 숙소가 있다. 음식도 태국식은 물론 서양식, 일본식, 중국식, 이슬람식 등 다양하게 서비스한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공항에서부터 픽업 서비스를 받으며 가족들에게는 인근 호텔 숙박권까지 패키지로 준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의료비가 싼 것은 아니다. 태국 여행 중 갑작스러운 뇌경색으로 이곳에서 수술을 받은 한국인 김정웅(가명·43) 씨는 “한국어 통역이 있어 의사소통에도 불편이 없고 선택한 식사를 도자기 그릇에 담아 주고 늘 친절한 간호사 등 서비스는 마음에 들지만 치료비는 한국보다 2배 정도 비싼 편”이라고 말했다.
○ 글로벌 마인드의 힘
범룽랏 병원의 급성장은 저렴한 의료 서비스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다. 이 정도의 저렴한 병원은 동남아 도처에 많다. 범룽랏 병원의 성장은 세계와 눈높이를 맞춘 글로벌 마인드와 홍보력이 뒷받침된 결과다.
이 병원은 의료서비스와 경영을 철저히 분리했다. 미국 의료전문가들이 경영과 해외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까닭에 운영시스템도 철저히 미국식이다.
범룽랏 병원은 아시아 최초로 미국과 캐나다의 의료수준에 맞춰 국제공인의료품질 심사를 통과했고 국제병원평가위원회(JCI)의 공인을 받았다. 이는 세계 의료시장의 흐름을 꿰고 있고 국제 의료분야에 광범위한 인맥을 확보하고 있는 미국 전문가들이 운영하기에 가능했다. 남들은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획득한 ‘아시아 최초’의 국제인증 마크들은 병원의 대외적 신용도를 보장한다.
병원에는 각국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22개 언어를 구사하는 30여 명의 통역사가 항시 대기하고 있다. 한국어 통역서비스도 보장되며 홈페이지는 한국어를 포함한 14개 국어로 운영된다.
중동의 부호들이 이 병원을 많이 찾는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 아누라스 의료원장은 “중동의 병원은 최첨단 장비로 무장해 있지만 치료 인력과 서비스는 중동 부호들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며 “모든 환자가 그러하지만 특히 중동 환자들은 값싼 의료비보다는 의료수준을 보고 병원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세계수준 의료진 24시간 대기 검사부터 수술까지 하루면 끝”
“우리 병원의 가장 큰 장점은 효율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환자는 하루 만에 검사부터 수술까지 마칠 수 있습니다.”
범룽랏 병원의 신 아누라스(사진) 의료원장은 병원의 신속처리 시스템을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 이 병원의 하루 외래환자는 3000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병원 내 어디에서도 환자들이 길게 늘어서 기다리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병실도 554개에 불과하다. 그런데 어떻게 연간 100만 명의 환자를 치료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신 원장은 “환자에게는 최적의 치료, 최소한의 입원이 필요한데 우리 병원에서는 의사들이 교대로 24시간 풀타임으로 일하기 때문에 신속하고 효율적인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병원의 평균 입원일도 3, 4일에 불과하다. 장기 입원 환자는 거의 없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결과를 확인하러 며칠 뒤에 다시 와야 하는 중복 방문을 할 필요 없이 한 번 방문해 검사 결과를 바로 확인받고 치료까지 이어지는 ‘원 스톱’ 서비스 체계다.
흥미롭게도 신 원장은 이 같은 ‘원 스톱’ 서비스 시스템의 아이디어를 방콕의 고질적인 교통 체증에서 찾았다. 교통지옥으로 소문난 방콕은 병원까지 왔다가려면 하루를 꼬박 도로에서 보내기 일쑤라는 것. 그 때문에 환자의 병원 방문 횟수를 줄이려고 노력한 끝에 완성된 것이 결국 원 스톱 서비스 체계다.
“우리 병원의 장점은 효율성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분야가 다 전문성과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어 전 세계 각국의 환자를 한지붕 아래에서 돌볼 수 있습니다.”
신 원장은 현재 시설로는 연간 100만 명 이상 점점 늘어나는 외래환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최근 병동을 신축 중이라고 설명했다. 신축 병동이 완성되면 이 병원은 매일 6000명의 외래 환자, 연간 200만 명이 넘는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신 원장은 서울대병원 등 한국 병원들도 방문한 경험이 있다.
그는 “한국의 국립병원 시스템은 국가적 통제 때문에 사립병원 수준의 질적 서비스를 보장할 수 없다”면서 “식비까지 일일이 국가의 통제를 받는 병원이 어떻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방콕=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연간 내원환자 100만 명 (내국인 60만 명, 외국인 40만명)
○ 병실 554실(4인실부터 특실까지 다양)
○ 직원 2600명 (이 중 의사 900명, 간호사 700명)
○ 의료검사실 135곳
○ 외래환자센터 33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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