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초대석]“수학-과학盲 교육현실 참담한 지경”

입력 | 2007-01-15 03:00:00

서울대 오세정 자연과학대학장(왼쪽)과 고려대 김수원 공과대학장은 “암기 위주의 고등학교 수학·과학 교육 때문에 국내 과학 인력 기반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며 “10∼20년 전 육성한 과학 인재가 오늘날 한국 경제를 이끄는 주역이 됐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훈구 기자


서울대는 이달 초 전국 9개 대학에 수학문제를 보내 자연계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치르도록 했다. 438명이 응시한 결과는? 100점 만점에 평균 28점이었다.

미적분학이나 공업수학 같은 대학 과정의 문제가 아니다. 출제된 20개 문항은 모두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골랐다.

“산업 현장에서 신입사원의 학력 저하를 불평할 만큼 한국의 수학·과학 교육 수준이 참담해졌다”는 과학기술계의 우려가 숫자로 증명된 셈이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등 6개 과학기술단체가 10일 ‘초중고교 과학교과과정 개편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입장’을 발표하고 수학·과학 교육 정상화를 위한 대책을 촉구한 것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현행 교육과정이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국내 과학인력 기반이 송두리째 붕괴될 위험에 처했다”는 주장이다.

공동 발표에 참여한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 오세정(54) 교수와 고려대 공과대학장 김수원(55) 교수가 12일 서울 동아일보사 회의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오 학장께서 중고교 수학·과학 교육의 문제를 제기하신 게 2003년입니다. 최근 상황은 어떤가요.

▽오세정 학장=대학 1학년이 수학·과학 수업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얘기는 오래전에 나왔죠. 해를 거듭할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2000년부터 시행된 7차 교육과정을 거친 학생의 수학·과학 학습 수준은 한마디로 한심합니다. 지난해 성균관대가 실시한 15개 대학 신입생 750여 명의 수학 학력평가에서 초등학교 6학년 수준 문제의 오답률이 50%에 육박했다더군요.

▽김수원 학장=공대 1학년 수업에서 교수가 칠판에 적분 기호를 그렸더니 “그 기호가 뭐냐”는 질문이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처구니없지만 웃을 수도 없었어요.

“선택과목 전락 후 학습능력 급속 저하

대학 신입생 초등6년 수학 오답 50%”

―근본원인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김=학생들 탓이 아닙니다. 의도는 좋았지만 방법이 미숙했던 교육 당국에 가장 큰 책임이 있어요.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의 학습 부담을 덜어 주겠다는 취지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난이도를 무시하고 모든 과목을 똑같이 선택하게 했으니, 결과는 뻔하지 않습니까?

▽오=어렵지만 반드시 배워야 할 내용마저 선택에 맡긴 게 문제입니다. 수학과 물리, 화학은 열심히 공부한 효과가 몇 개월 뒤에 서서히 나타나는 과목이에요. 대입에 모든 것을 건 학생이 그런 끈기를 발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달달 외우면 바로 성적이 오르는 과목을 고르는 건 당연한 일이죠.

―고등학교 때 충분히 공부하지 않은 결과는 대학에서 그대로 나타날 텐데요.

▽오=실리를 따져 쉬운 길만 찾던 습관이 대학에 이어집니다. 취직을 위한 학점 따기에 수월한 강의로만 학생이 몰리는 거죠. 공부하기 까다로운 수업은 대학에서도 인기가 없습니다.

▽김=고등학교 수학·과학 교과서에서 중요한 기본 내용이 조금씩 빠지고 있는 걸 아시나요? 학생의 기피 현상을 무마하기 위해 까다로운 내용을 빼는 겁니다. 이해 없이 암기로 점수를 낼 수 있는 수학과 과학을 만들고 있어요. ▽오=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학·과학 수준이 낮아지다 보니 대학 강의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똑같은 이름의 강의에서 갈수록 더 쉬운 내용을 가르쳐야 해요. 졸업생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김=요즘 학생은 ‘실수하지 않는 방법’에 너무 매달리는 것 같습니다. 쉬운 내용의 시험에서는 작은 실수가 결과를 크게 가르죠. 고등학교 시절 내내 이런 경쟁에 익숙해진 겁니다. 실수를 두려워하는 버릇은 창조적 사고의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기피현상 줄이려고 중요 내용 빼기도

적분기호를 뭐냐 묻는 공대 학생까지”

―지금 당장 내놓을 대책은 무엇이겠습니까.

▽오=교육인적자원부에 찾아가서 “과학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얘기했더니 “고등학교 교사들의 세력다툼에 대학교수가 왜 끼어드느냐”는 듯한 반응을 보이더군요. 간부급 인사를 찾아가서 설득해 봐도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기업인 등 산업 현장에서 강한 문제제기가 나오도록 도움을 요청할 생각입니다.

▽김=고려대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입학 전 2주 동안 무료로 수학·과학 교육을 실시합니다. 그런데 참여도가 너무 낮아요. 비슷한 시기의 영어회화 코스에 신청 문의가 빗발치는 현상과 대조적이죠. 강제로 듣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오세정 학장:

△1975년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1981년 미국 스탠퍼드대 물리학 박사 △1984년∼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1990년 미국 미시간대 방문교수 △1994년 일본 도쿄대 방문교수 △1999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2004년∼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 △2005년∼ 한국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 회장

:김수원 학장:

△1974년 고려대 전자공학과 졸업 △1987년 미국 텍사스주립대 전기공학 박사 △1987년∼ 고려대 전자공학과 교수 △1994∼1996년 과학기술부 첨단기술분야 전문위원 △1998∼2003년 고려대 반도체기술연구소장 △2004년∼ 고려대 공과대학장 겸 공학대학원장 △2006년∼ 한국공과대학장협의회 회장 △2007년∼ 대한전자공학회 부회장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