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인천 연수구 동춘동 여성의 광장.
수업이 끝나 수강생들이 모두 돌아간 텅 빈 교실에 60대 남자가 홀로 남아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33년간 현대제철(옛 인천제철)에서 현장 근로자로 일하다 2004년 말 퇴직한 백기용(62) 씨.
손자 손녀의 재롱을 보며 여행이나 다닐 나이지만 그는 늘 새로운 꿈을 품고 자기계발에 나서는 열정으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였던 그는 1972년 4월 현대제철에 입사해 현장 근로자로 배치됐다.
쇳물 온도가 섭씨 1600도나 되는 현장에서 그는 일류 제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고철을 녹여 철근 등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쓰이는 부원료(첨가물)인 탄소(C), 규소(Si) 등 화학 원소를 몰라 동료들에게서 핀잔을 들었다.
그때부터 그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퇴근 뒤 화학책을 달달 외웠어요. 당시에는 목표도 없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공부를 했죠.”
그는 1993년 당시 공업진흥청이 인정한 ‘명장’에 오른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금속공학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목표를 찾았다.
“술자리에서 제강 기능사 자격증 얘기가 나와 ‘나도 도전해야겠다’고 했더니 후배들이 ‘반장님은 나이가 많아 어렵다’고 하더군요.”
동료들에게 뭔가 보여 줘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고된 현장 일을 마치고 회사에 남아 매일 밤 12시까지 공부했다. 오전 4시면 일어나 책을 잡았다.
2000년 11월 그는 당당히 제강 기능사가 됐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그는 1년 뒤 현장기술자로서는 최고의 국가자격증인 ‘제강 기능장’ 시험에 도전해 합격했다.
백 씨의 다음 행보는 대학 졸업자도 합격하기 힘들다는 기술사 시험 도전이었다. 기술사 합격률은 응시생의 고작 2%. 그는 2002년 5월 꿈에 그리던 기술사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30분을 공부하더라도 모든 잡념을 버리고 집중했어요. 직원들에게 눈치가 보여 현장에서는 책을 펴지 않고 퇴근 후에 공부했습니다.”
2004년 말 퇴직한 뒤 그는 마음속에 ‘대학생’이란 꿈을 다시 그렸다. 2005년 4월에는 고입 검정고시에, 그해 8월에는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리고 그는 지난해 12월 말 학점은행제를 통해 평생 소원이던 대학졸업장을 받았다.
기능장과 기술사 자격증 소지자에게는 각각 39점과 45점의 학점을 주기 때문에 1년 6개월 만에 졸업학점인 140학점을 딸 수 있었던 것.
그는 지금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3월부터 인하대 공학대학원 재료공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는다.
자원봉사 활동도 남에게 뒤지지 않는 그는 남구의 ‘문학산 지킴이’로 활동하는 한편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유물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백 씨는 “소망하는 것을 마음에 그리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진리”라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