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축출하는 길이 무력 사용 외에는 없기 때문에 부득이 군사행동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1991년 1월 17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특별연설이 TV로 생중계됐다. 대(對)이라크 전쟁 개시를 국민에게 알리는 내용이었다.
그는 “이번 전쟁은 장기전이 되지 않을 것이고 사상자는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전쟁이 제2의 베트남전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특별연설이 진행되고 있을 때 이라크 바그다드는 이미 불바다가 됐다. 당시 본보 1면의 머리기사.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의 공습으로 이라크의 100여 공군기지가 파괴되는 등 이라크 공군이 궤멸됐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정예부대인 공화국 수비대의 대부분과 화학무기도 파괴됐다.’
다국적군의 공격은 대단했다. 2500여 대의 전투기가 이라크를 융단 폭격했다. 비행장과 화학공장은 물론 통신센터와 정유공장도 공격을 받았다.
바그다드 피습 5시간 뒤 후세인 대통령도 개전을 선언했다. 그는 바그다드 라디오방송을 통해 “사탄 부시와의 대결이 시작됐다. 이슬람의 횃불을 치켜든 용맹한 이라크인은 승리할 것이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 전쟁을 ‘사막의 폭풍 작전’이라고 한 데 맞서 후세인은 ‘모든 전투의 어머니’라는 용어를 썼다.
그러나 이라크군은 초라했다. 스커드 미사일과 탱크 등 재래식 무기로는 미군의 스마트 폭탄, 토마호크 미사일, 패트리엇 미사일 등을 당해 내기 어려웠다.
사막의 폭풍 작전은 쿠웨이트 정권의 회복과 함께 2월 28일 끝났다. 이라크의 사상자는 10만 명에 육박한 반면, 다국적군은 1400여 명에 그쳤다.
사막의 폭풍 작전은 끝났지만 이라크에는 아직도 폭풍이 불고 있다.
16년 전 작전 때와 주인공만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역할을 아들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대신하고 있다. 1991년 국방장관이었던 딕 체니는 지금 부통령이 됐다. 최근 처형된 후세인 대통령의 역할은 테러리스트들이 이어받은 듯하다.
지난주 부시 대통령은 미군의 추가 파병을 뼈대로 하는 새 이라크 정책을 내놓았다. 종파 간 유혈 충돌과 같은 내전 상황을 막겠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구상은 ‘지속 가능한 평화’일까, 아니면 ‘지속 가능한 전쟁’일까.
차지완 기자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