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東京) 도시마(豊島)구에 사는 요시다 게이코(가명·30대·여) 씨는 지난해 12월 30일 태어난 장남의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구청에 갔다가 서류접수를 거부당했다.
구청 측은 '이혼 후 300일 이내에 태어난 아이는 전 남편의 아이로 추정한다'는 민법 772조를 이유로 가정법원의 판결을 받아올 것을 요구했다.
TV아사히에 따르면 요시다 씨는 전 남편과 지난해 3월13일 이혼한 직후 지금의 남편과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혼인신고는 뒤늦은 9월21일 했다. '여성은 이혼한 날로부터 6개월이 지나지 않으면 재혼할 수 없다'고 규정한 민법 733조 때문이었다.
요시다 씨의 출산예정일은 올해 2월19일. 계획대로라면 의학적으로든 법적으로든 현 남편의 아이로 인정받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태아의 상태가 좋지 않아 '이혼 후 300일'에서 7일이 부족한 지난달 말 조기출산을 한 것이 문제였다.
물론 재판 절차를 밟으면 요시다 씨도 장남을 친아버지인 현 남편의 호적에 올리는데 문제가 없을 전망이다. 그러나 부모의 사정 때문에 재판을 받지 못한 아이가 호적 없이 커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올해 16세인 사카가미 구미(가명) 양은 호적이 없다는 이유로 여권발급을 거부당해 올 6월 해외수학여행을 떠나지 못할 처지다.
지금 양친이 모두 친부모이지만 모친이 민법 772조의 덫에 걸려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
사카가미 양의 모친은 전남편으로부터 극심한 폭력에 시달린 경험이 있어 지금도 재판은 엄두를 못 낸다.
이 때문에 당사자들은 "민법 733조와 772조는 의학과 사회 발전을 고려하지 않은 봉건시대 유물"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6개월간 재혼금지 조항은 유엔(UN)이 1985년 남녀차별을 이유로 폐지를 권고했고 일본 법학계에서도 폐지론이 우세하다.
그러나 법 개정의 칼자루를 쥔 일본 정부와 여당은 꼼짝도 않는다.
민주 공산 사민 등 야3당은 지금까지 6월 여성의 재혼금지기간을 6개월에서 100일로 줄이는 민법개정안을 9번이나 제출했지만 매번 회기를 넘겨 자동 폐기됐다.
야3당이 내놓은 개정안에는 현대판 '적서차별' 논란을 빚어온 '적출자와 비(非)적출자간의 상속권 차별' 폐지도 포함돼 있다. 적출자는 법률적인 혼인 관계에서 태어난 자녀를 말한다.
민법개정운동을 펼쳐온 일본의 시민단체들은 "적출자와 비적출자의 상속권을 차별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일본과 필리핀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국의 경우 여성의 재혼금지규정은 폐지했으나 이혼 후 300일 이내에 태어난 아이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전남편의 아이로 추정한다.
도쿄=천광암특파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