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사는 육진영한의원 김영배(42) 원장이 아들 종택(11) 군, 딸 소연(9) 양과 함께 밀가루 우유 달걀 등으로 빵을 만들고 있다. 원대연 기자
《“아빠, 오늘은 민지가 좋아하는 카레라이스 만들어요.” “카레라이스? 그래, 민지가 좋아하지. 그럼 우리 장보러 갈까.”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사는 회사원 김진호(39) 씨의 집은 일요일 오전이면 온통 음식 재료로 범벅이 된다. 김 씨와 아들 민수(10)의 요리교실이 열리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카레라이스에 필요한 재료를 물어 메모하는 아들이 대견했다. 시키지 않아도 두 살 어린 여동생까지 챙기는 모습을 보고는 더욱 흐뭇해졌다. 평소 잦은 출장과 바쁜 회사 일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김 씨가 ‘아빠 노릇하기’의 해법으로 택한 것은 바로 요리. 짧은 시간에 많은 교감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표현력-창의력 향상 등 교육효과 커… 떡볶이 피자 등 간단한 메뉴부터
중앙대 유아교육학과 이원영 교수는 “요리만큼 가족이 함께 즐기면서 배울 수 있는 산교육은 없다”고 강조했다. 독일 일본 영국 등은 요리의 교육효과를 인정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의 정규과목으로 채택했다.
이탈리아요리학교(ICIF) 코리아의 이정은 실장은 “요리의 천국으로 불리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부모와 함께하는 어린이 요리’를 다루는 TV 프로그램과 인터넷 사이트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프랑스에는 편식 어린이를 위한 요리 프로그램까지 있다. 어린이 비만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집중력 표현력 발달에 도움
요리는 자녀에게 멀게만 느껴진 아빠를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또 복잡한 요리 과정을 순서대로 익히다 보면 체계적으로 사고하는 방법도 깨치게 된다.
이 교수와 이 실장의 조언을 통해 요리로 얻을 수 있는 교육 효과를 정리했다.
①두뇌와 오감 발달=재료를 씻고 다듬고 반죽하는 등의 조리 과정에서 손의 근육이 움직이면서 뇌를 자극해 두뇌가 발달한다. 색 향 맛 촉감 등이 모두 다른 재료를 만지면서 오감이 저절로 발달한다.
②수학적 사고=재료를 사고 조각내거나 한 컵, 두 컵 등 수량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수 개념을 배운다. 재료를 다듬으면서 도형 감각을 익힌다.
③과학적 사고=쌀이 밥이 되고, 옥수수를 튀겨 팝콘을 만드는 작업을 통해 물질의 화학적 물리적 변화를 배운다. 요리 전 재료의 상태와 요리 후 변한 모습을 설명해주면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④자신감과 성취감=‘어른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길러준다. 다만 처음부터 너무 완벽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맛이 없거나 모양이 엉망이라고 잔소리하면 싫증을 내고 자신감을 잃는다.
⑤책임감=요리를 마친 뒤 설거지를 하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면서 책임감을 느낀다.
⑥사회성=요리를 함께 만들면서 협동심을 배운다. 만든 음식을 동생이나 친구와 나눠 먹으면서 ‘혼자가 아닌 함께 사는 사회’를 배운다.
⑦집중력과 관찰력=요리가 완성될 때까지 몰두하다 보면 집중력과 관찰력이 저절로 좋아진다.
⑧지시이행 능력=부모의 설명이나 요리책의 그림에 따라 요리를 하면서 말과 그림을 이해하고 따라 하는 능력이 길러진다.
⑨표현력=‘버무린다’ ‘채썬다’ 등 평소 잘 쓰지 않는 표현을 통해 어휘력과 표현력이 좋아진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부터 시작
음식을 만들어 본 경험이 거의 없는 아빠가 집에서 아이와 함께 요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칼질도 서툴고 주방기구도 낯설다.
2005년부터 린나이 요리교실에서 ‘어린이 요리교실’을 운영하는 옥지은 실장은 “처음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 가운데 간편한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떡볶이 스파게티 피자 돈가스 쿠키 핫케이크…. 시기는 자녀들 학습에 지장이 적은 방학이 적기.
구체적인 요리 절차는 5단계를 순서대로 밟는 것이 무난하다.
우선 장보기. 각종 재료의 기본적인 특징과 쓰임새를 알려주면서 아이들이 직접 장을 보도록 한다. 셈이 가능한 자녀에겐 계산까지 맡겨본다.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등 영양성분과 비타민에 대한 설명도 곁들이면 금상첨화. 어려운 용어를 쓰는 것은 금물. 이 성분으로 키가 큰다거나 눈이 좋아진다는 식이 좋다.
두 번째는 재료 손질. 구입한 재료를 깨끗이 씻고 자르게 할 때 놀이 형식을 취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양으로 손질하도록 하면 신이 나서 한다. 칼처럼 위험한 주방기구를 쓸 때는 아빠가 손을 함께 잡고 도와주면 자연스럽게 친근감을 높일 수 있다.
세 번째는 조리. 찌고 끓이고 볶고 굽는다. 가장 많은 재료의 변화가 일어난다. 아빠가 여러 질문을 던져 자녀가 이를 관찰하도록 유도한다.
네 번째는 완성. 다양한 모양으로 장식하도록 해 아이의 창의력을 높일 수 있다. 아이가 원하는 모양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아빠도 같은 모양을 만들어 비교해본다.
마지막으로 마무리. 설거지와 음식물 청소 및 분리수거 등을 함께 한다. 환경교육의 소중한 현장이다. 평소 엄마나 할머니가 요리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도 깨닫게 한다.
옥 실장은 “요리의 모든 과정에서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고 아이의 생각대로 진행하는 것이 현명하다”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자녀와 함께 만드는 ‘어린이 요리교실’집에서 요리를 하기 어려운 여건이라면 어린이단체, 백화점, 구청 등에서 운영하는 어린이 요리교실을 이용해 봄 직하다.운영주체프로그램연락처(02)기간특징린나이어린이 영어 요리교실320-5817∼9유치원은 연중, 초등학생은 방학 때영어로 수업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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