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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한국측 문건 유출 “국운 걸린 협상중 누가 이런짓을…”

입력 | 2007-01-20 03:01:00

협상결과 설명19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김종훈 한국 수석대표(왼쪽)와 웬디 커틀러 미국 수석대표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6차 협상 결과에 대해 각각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만약 미국의 비밀 협상전략이 언론에 유출된다면 정말 피해가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6차 협상 마지막 날인 19일 낮 12시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기자회견장. 웬디 커틀러 미국 대표는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 측의 협상전략을 담은 비밀문서가 언론에 유출된 것을 어떻게 보는가”라는 기자들의 물음에 “질문이 나오길 기다렸다”며 입을 열었다.

커틀러 대표는 “국익(國益)을 위해 노력하는 김종훈 한국 대표와 협상단에는 굉장히 안된 일”이라고 동정을 표하기도 했다.

비슷한 사건이 방송위원회에서도 불거지는 등 FTA 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상황에서 벌어지는 ‘적전분열(敵前分裂)’ 양상이 심각하게 국익을 위협하고 있다.

○ 이틀 연속 노출된 협상 전략

일부 언론이 정부가 국회 한미 FTA 특별위원회에 보고했던 ‘고위급 협의결과와 주요 쟁점 협상방향’ 등의 비(非)공개 문건을 18일 “한국이 무역구제(반덤핑조치 개선안)를 협상카드로 쓸 것”이라고 보도하면서 파문이 시작됐다.

이들은 다음 날인 19일에도 ‘한미 FTA 금융협상 쟁점 현황 및 분류’라는 특위 보고서의 상세한 내용을 보도했다.

협상단 관계자는 “이 문서는 특위 위원에게 보고한 뒤 곧장 회수해 국회의 캐비닛에 따로 보관하는 비밀문서”라며 “특위에 참가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복사해 FTA에 반대하는 매체에 흘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문제가 커지자 대통령 직속기구인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회는 이날 ‘협상전략 유출에 대한 위원회 입장’이라는 성명을 내 “국운을 건 협상이 한창인 가운데 비공개 협상전략을 낱낱이 공개하는 것은 협상단을 무장해제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야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회 FTA 특위의 송영길 열린우리당 간사와 윤건영 한나라당 간사는 이날 문건 유출자를 찾아내기 위한 증거수집, 비공개 문서가 보관된 국회 내 비공개 열람실 폐쇄 등의 방안을 협의했다. 또 당초 26일로 예정됐던 특위를 24일로 앞당겨 진상조사도 벌이기로 했다.

특위 관계자는 “문건 유출자가 확인되면 비밀유지 서약서에 따라 강력히 제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약서에 따르면 비공개 문건을 유출한 특위 위원은 향후 정보공개 대상에서 제외되며 그 보좌진은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 “협상 깨려는 세력이 의도적으로 흘렸을 수도”

김종훈 대표는 비공개 문건이 처음 유출된 18일 기자들과 만나 “커틀러 대표와 오늘 아침에 만났는데 ‘꼼꼼히 봤다. 잘 봤다’고 하더라”며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뗐다.

그는 “저쪽(보고서를 유출한 쪽)은 무슨 의도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 (협상 결과를 잘 내서) 정보를 유출한 사람이 ‘이게 아니었구나’하고 생각하고 느끼게 해줄 것”이라고도 했다. 협상을 깨려는 국내 세력이 의도적으로 보고서를 흘렸을 것이라는 뉘앙스였다.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회가 “한미 FTA에 반대하는 소신이 있어도 국익을 위해 지켜야할 ‘정도(正道)’는 있다”며 “자해나 다름없는 협상전략 유출은 치졸한 꼼수”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것도 이 같은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통상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결정적으로 국익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울대 이근(국제지역학) 교수는 “미국에서는 정부가 의회에 보고한 비공개 정보를 누출한 사람에 대해 민형사상의 처벌까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식으로 정보가 계속 유출되면 상대국에서 한국의 협상절차에 대해 의구심을 갖거나 협상 의지가 약화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하대 정인교(경제학) 교수도 “이번에 전략이 노출된 무역구제 부문은 한국 측이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분야였는데 전략이 공개됨에 따라 협상카드로서 효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 방송위원회도 FTA 문건 유출로 진통

방송위원회도 한미 FTA 관련 문건 외부유출 때문에 내홍(內訌)에 휩싸였다.

방송 분야 개방과 관련된 한미 FTA 협상 문건이 외부로 유출되면서 방송위 수장인 조창현 위원장과 최민희 부위원장 사이에 갈등이 발생한 것.

방송위에 따르면 조 위원장은 15일 한미 FTA 협상 관련 문건의 외부유출 의혹과 관련해 최 부위원장을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마권수 상임위원이 18일 최 부위원장을 상대로 조사를 실시했다. 사무처 관계자들도 감사실의 감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위원장이 직무상 독립이 보장되는 방송위원을 조사하도록 지시한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최 부위원장이 문건유출 의혹을 받는 이유는 11일 언론노조의 성명이 발단이 됐다. 언론노조는 “10일 김종훈 대표 주재로 열린 비공개 관계부처 실무 협상전략회의에서 외교통상부와 재정경제부가 방송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고 주장했다.

최 부위원장은 19일 열린 방송위 상임위원 회의에서 자신에 대한 내부조사의 문제점을 제기했고 이와 관련해 위원장과 상임위원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바로잡습니다]

△20일자 2면 ‘한미 FTA 한국 측 주요 협상전략문건 유출’ 기사 중 김종훈 대표 주재로 10일 열린 비공개 관계부처 실무 협상전략회의에 방송위원회 최민희 부위원장은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 회의에는 곽진희 국제교류부장, 윤석배 국제교류부 선임조사관이 참석했다고 방송위가 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