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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고어 족, 쇼핑은 기본…독서 게임 공연 영화 한자리서 OK

입력 | 2007-01-22 03:00:00


“오늘 친구들 만나서 뭐하니?”

“코엑스에 가요.”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사는 중학생 김현민(15) 군이 주말에 엄마와 자주 나누는 짧은 대화. 엄마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물으면 김 군은 “영화를 본다”거나 “게임을 한다”고 답하지 않고 “코엑스에 간다”고 대답한다.

이들은 코엑스에 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중요한 오락이자 생활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지는 코엑스에서 만나서 결정한다. 무엇을 해도 좋다. 그 안에 그들이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주부 정현진(38) 씨도 주말마다 현대아이파크몰에서 ‘몰링(malling)’을 한다. 가족과 함께 오전 10시쯤 도착해 가전제품 쇼핑을 하고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다. 식사를 마치면 가족과 게임코너에서 미니골프게임을 즐긴다.

딸(8)과 함께 서점에서 책을 읽을 때도 있고, 남편과 이벤트파크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기도 한다. 때로는 온 가족이 보드게임 공간에서 무료로 게임을 즐긴다.

코엑스몰(서울 강남구 삼성동), 현대아이파크몰(용산구 한강로3가), 센트럴시티(서초구 반포동), 라페스타(경기 고양시 일산구) 등 복합쇼핑몰의 인기가 확산되면서 최근 한국에서도 ‘몰고어(mall-goer)’가 새로운 소비 주체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 미국 유럽에 이어 한국도 몰고어족(族) 일반화

“쇼핑(shopping)하게 하지 말고 몰링(malling)하게 하라.”

이 말은 미국과 유럽 등 서구의 대형 복합쇼핑몰들이 몇 년 전부터 부쩍 강조하고 있는 마케팅의 중요 명제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백화점이나 할인점처럼 쇼핑 중심의 유통업체가 주류를 이룬 한국에서는 ‘몰고어’를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도 규모 면에서 미국 몰에 뒤지지 않는 몰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대아이파크몰은 초대형 백화점보다 2∼3배 크고, 코엑스몰은 지하 1층 한 층의 면적이 어지간한 백화점 8∼10개 층을 합쳐 놓은 규모다.

본보 취재팀이 코엑스몰과 현대아이파크몰에서 100명씩 200명을 만나 대면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의 몰고어는 평균 3.59시간을 몰에서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간에 평균 3.3개의 행위를 한다. 쇼핑 하나만을 하거나 쇼핑 혹은 식사 두 가지 정도를 하는 일반 쇼핑객과는 달리 몰고어는 게임 독서 스포츠 산책 음악감상 영화관람 등 다양한 행위를 몰에서 함께 하는 것이다.

○ 소비자와 유통, 상생의 조화

몰고어의 등장이 한국 소비시장의 새로운 변화를 낳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코엑스몰이 지난해 고객 3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곳을 찾은 고객들의 42.3%가 몰링을 하면서 쓴 평균 금액이 1만∼3만 원이었다. 실제 몰 안에서는 그다지 돈 쓸 일이 많지 않다. 공짜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몰을 운영하는 유통업체들의 생각도 다른 유통업체와 조금 다르다. 고객들이 많은 돈을 쓰도록 유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렴하게 실컷 즐기게 해 준다. 이들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이야말로 복합쇼핑몰이 사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현대아이파크몰이나 코엑스몰 등은 “당장의 이윤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미래의 고객이다.

미국의 몰고어는 30대가 주류다. 반면 한국의 몰고어는 10대와 20대가 이끌고 있다. 이들이 주요 고객으로 자랐을 때 한국 소비의 주류는 ‘쇼핑객’이 아니라 몰고어가 될 수 있다는 게 복합쇼핑몰 운영자들의 생각이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몰고어(mall-goer): 몰링(malling)이란 사고 싶은 물건만 찾아다니는 쇼핑과 달리 초대형 복합쇼핑몰에서 다양한 생활을 즐기고 생활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리고 몰링을 주로 하는 새로운 소비자들을 미국에서는 ‘몰고어(mall-goer)’라고 부른다.

■ 미국에선…

이미 초대형 복합쇼핑몰이 자리 잡은 미국에서 몰링(malling)은 쇼핑(shopping)과 다소 다른 의미를 지닌다.

한국에서 몰고어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미국에서는 그 안에서도 새로운 부류가 나타날 정도로 형태가 발전됐다.

‘몰랫(mall rat)’은 몰고어 가운데 10대와 20대 남자를 말한다.

미국에서 생쥐(rat)는 귀여운 이미지를 나타내는데 이 단어를 ‘몰’에 붙인 것. 이들은 미로처럼 얽혀 있는 몰에서 생쥐처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낸다.

‘몰리(mallie)’는 젊은 여성들을 뜻한다. 쇼핑과 함께 몰 안에 있는 영화관과 카페, 이벤트 등에 특히 관심이 많다.

‘몰워커(mall walker)’는 몰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것을 운동으로 삼는 이들이다. 현대아이파크몰에 따르면 몰에서 3시간을 돌아다닐 경우 약 만 보를 걷는 운동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