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꼽히는 퐁뒤. 원래는 알프스 산동네의 겨우살이 음식이었다.
사방이 높고 험한 산들로 가로막힌 스위스의 겨울은 매서운 추위와 배고픔의 시간이었다. 말라비틀어진 치즈를 냄비에 넣어 불로 녹여 딱딱한 빵을 찍어 먹던 퐁뒤는 산골짜기 가난한 사람들의 주린 배를 채우는 유일한 구황음식이었던 셈이다.
농사지을 땅도, 이렇다 할 산업도 없던 스위스가 가진 것은 ‘사람’밖에 없었다. 그래서 스위스 남자들은 중세 말부터 주변국에 돈을 받고 용병으로 전쟁터에 나가 싸웠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호구지책이었다.
당시 용병은 돈만 밝히는 난봉꾼으로 통했다. 용병들은 기강이 없고 배신을 잘하고 횡포만 부릴 뿐 막상 전투에선 내빼기에 바빴다.
하지만 산악지방에서 강인하게 살아 온 스위스 용병은 달랐다.
이들은 엄청난 피해를 보면서도 속전속결로 용맹을 떨쳤다. 그럴 만한 이유도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일을 마치고 전리품과 돈을 챙긴 뒤 집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스위스 용병은 받은 돈에 신뢰로써 보답하기로 이름 높았다. 자연히 주변국 군주들은 전쟁이 날 때마다 스위스 용병을 찾곤 했다.
로마 교황청도 예외가 아니었다. 15세기 말 교황 식스투스 4세는 스위스와 동맹을 체결했고, 알렉산더 6세는 스위스 용병부대를 고용해 전쟁에 나가기도 했다.
특히 추기경 시절 스위스 용병들과 함께 전쟁에 참여했던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이들의 용맹을 믿고 좋아했다. 그는 1505년 6월 스위스연방에 200명의 용병을 상비군으로 파견해 주도록 요청한다.
그해 가을 로마로 출발한 150명의 스위스 병사들은 해가 바뀌어 1506년 1월 22일에야 교황청에 도착해 임무 수행에 들어갔다. 바티칸 궁을 지키는 군대이자 교황의 ‘보디가드’인 교황청 스위스 근위대(Papal Swiss Guards)는 이렇게 탄생했다.
스위스 근위대는 이후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도 끝까지 임무를 다했다. 1527년 5월 ‘로마 약탈’ 때 카를 5세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군대와 치른 전투에서는 189명의 근위병 중 147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파랑 빨강 노랑의 화려한 르네상스시대 복장에 도끼 창을 든 스위스 근위대는 500년이 넘은 오늘날까지 교황청을 지켜오고 있다. 스위스는 1859년 법률로 스위스인의 외국군 입대를 금지했지만 교황청 근위대만큼은 예외로 인정한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