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노무현 대통령에 관련된 내용이면서도 국민이 담담하게 접할 수 있는 뉴스가 하나 있었다. 그가 퇴임 후 살 집의 착공식이 열렸다는 보도가 그것이다. 퇴임이란 단어가 많은 사람에게 길고 지루했던 터널의 끝을 보는 듯한 안도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은퇴 후 (지방의) 고향에서 사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소식에 여론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면 퇴임 대통령의 귀향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퇴임 후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이 당연시되는 역사를 만드는 것이 나의 소망”이라고 감동적인 선언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대구의 한 아파트를 구입해 귀향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사흘쯤 머물러 최초의 낙향 대통령 기록을 남긴 다음 슬며시 귀경해 지금까지 연희동에서 산다. 구속되기 직전 다시 낙향이 거론됐지만 향지의 부녀회장이 ‘제발 그를 구속해 고향을 더럽히지 않게 해 달라’고 수사기관에 간청함으로써 그는 주민들에 의해 귀향을 거부당한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기록도 함께 갖게 됐다.
퇴임 후 살 집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를 제외하면 전직 대통령 누구도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이 없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경남 합천으로 귀향하라는 정치적 제의를 거부하다가 결국은 백담사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사법처리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고통스러웠던 말년 한때 경남 거제로 낙향할 것을 고려했지만 경호가 어렵다는 이상한 이유로 상도동을 택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정치적으로 그를 낳고 키워 준 전남 하의도가 아닌 동교동에서 생활함으로써 그를 태양처럼 우러러 보는 호남 주민들을 외면했다.
전직 대통령들이 그토록 서울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립묘지가 예약돼 있어 죽은 후에도 태어난 곳에 묻힐 수 없는 처지이다 보면 여생이라도 고향에서 보내고 싶어 할 것 같은데 말이다. 떠나온 권좌에 미련이 남아 권부 근처에 살고 싶은가 아니면 과거 측근들의 집결지인 서울을 떠나는 것이 외로워서일까. 혹은 단순히 지방과 서울의 생활수준 차이 때문에 지방에서 살기 불편해서인가. 하긴 퇴임 대통령의 귀향이 이 시대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비행기를 타고 12시간이면 태평양 반대편에 도착하는 시대에, 자동차로도 기껏 너덧 시간이면 땅 끝을 보는 손바닥만 한 국토에서 낙향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시대도 아니지 않은가.
따라서 은퇴 후에는 어디에서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해 보인다. 미국 대통령들은 대개 은퇴 후에도 보람 있는 일을 찾아 활동함으로써 계속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 백악관 집무실에서 전화를 하며 망측한 짓을 해 가정생활에서는 과히 모범적이지 못했던 빌 클린턴 대통령도 은퇴 후에는 (나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훨씬 건전하게 살며 강연 등으로 재임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될 큰 수입과 인기를 얻고 있다. “대통령보다 더 높은, 국민이라는 칭호를 다시 얻게 된 것은 영광”이라며 퇴임 후 조용히 자서전을 쓰고 봉사활동을 펴고 있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재직 때보다 지금 더 큰 존경을 받고 있다.
국민이 박복한 탓인지 우리는 아직 존경할 만한 전직 대통령을 못 가져 봤다. 유배생활 후에도 ‘손 볼 ×이 몇 명 더 있다’고 겁주던 전임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랑받을 리 없다. 온 세계에 퍼져 나갈 TV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찍으며 울먹이던 대통령도 자랑스러울 수 없다. 이를 악물고 후임 대통령을 비난하는 전직 대통령도 국민이 존경하기 어렵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시기에 툭하면 북한의 김정일을 만나겠다며 소란을 일으키는 전직 대통령은 도무지 나라에 도움이 안 된다.
축복받는 귀향 대통령이 보고 싶다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이라는 축복받은 신분으로 가는 중간 역”이라고 미국 작가 존 업다이크는 말했다. 그러나 퇴임이 축복이 될지 고통이 될지, 또 고향에 가는 것이 귀향이 될지 귀양이 될지는 전직 국가원수로서 얼마나 기품 있고 지혜로운 삶을 사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퇴임 후에도 “언론과 계속 싸우고”, “개헌 반대론자들을 끝까지 공격할 것”이라는 노대통령은 새로 짓는 집에서 ‘축복과 고통’, ‘귀향과 귀양’ 중 어느 쪽 삶을 살게 될 것인가.
이규민 大記者 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