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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기]피플&피플즈/詩쓰는 경찰관 류종호 경사

입력 | 2007-01-23 06:27:00


“경찰관이 어떻게 시를 쓰게 됐느냐고 주위에서 자주 묻지요. 모든 시인이 그렇듯이 그냥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천 남부경찰서 수사과 지능범죄팀에 근무하는 류종호(46) 경사는 3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다.

충남 부여의 한 농촌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전국 규모의 각종 글짓기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하는 등 중고교에 진학해서도 문학적 감수성을 뽐냈다.

그러나 집안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한 뒤 군에 입대하면서 문학에 대한 꿈을 접었다.

군 동료의 권유로 1989년 경찰공채시험에 응시해 합격한 그는 특공무술유단자(공인3단)로 동부경찰서 강력반에 배치됐다.

2년 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경기 양평군 일가족 4명 생매장 사건의 범인을 붙잡는 등 베테랑 강력계 형사로 자리를 잡았다.

며칠씩 잠복근무를 하며 범인을 잡는 데 매달렸지만 매달 새로 발간된 시와 소설은 빼놓지 않고 구입해 읽으며 문학에 대한 향수를 달랬다. 또 틈틈이 시간이 나면 시를 습작했다.

1991년 그는 한국문인협회 인천지부가 주최하는 인천문단 신인작가 공모전에 도전했다.

어렸을 때 남의 집 식모살이를 떠난 누나를 그리워하는 내용의 ‘감꽃편지’로 시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당시 심사위원단은 ‘고향을 소재로 자기성찰의 성향이 돋보이는 수작’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이듬해에는 월간지 ‘문학세계’와 ‘수필과 비평’에서 시와 수필 부문 신인상을 나란히 받았다.

1993년 3월 드디어 그의 첫 시집 ‘감꽃편지’가 발간됐다. 유년 시절 추억과 고향 풍경을 노래한 서정적인 시가 대부분이었지만 형사생활의 애환을 그린 시도 넣었다.

‘∼영장신청이 대기 중인 보호실/세상모르게 잠들어 있는 저 사람들은/지금 무슨 꿈들을 꾸고 있을까/곰팡기 배인 모포에 말려/그래 이 밤도 단잠에 취해/끝없이 다들 행복하여라.’(‘영장을 집행하면서’ 중에서)

같은 해 12월에는 두 번째 시집 ‘가슴이여 뜨거운 가슴이여’를 내며 왕성한 필력을 드러냈다.

형사 생활을 계속했지만 또 다른 문학적 도전을 위해 그는 1994년부터 소설 공부에 나서게 된다.

3년 만에 첫 장편소설 ‘안개 속으로 걸어가다’를 선보인 그는 1998년 세 번째 시집 ‘더 큰 사랑의 몸 섞임으로’를 발간했다.

그동안 자신이 구속한 범인에게 시집과 소설을 보내주고 위로하는가 하면 동료들에게 축시를 써주기도 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인천지부 시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언제부터인가 책을 함부로 내는 게 두려워졌다”며 “그간의 삶을 돌아보는 네 번째 시집과 두 번째 장편소설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