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유신정권 때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에 연루돼 사형이 집행됐던 8명에 대한 어제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사형당한 피고인들의 진술서는 고문·협박으로 임의성이 없는 상태에서 검찰관이나 수사관이 불러주는 대로 작성한 것으로 보이므로 증거 능력이 없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이번 판결로 사건 관련자와 유족들이 다소나마 한을 풀고 명예를 회복할 길이 열렸다.
재판부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고인들이 중앙정보부에서 구타와 물고문 전기고문을 받고 검찰로 송치돼 검찰관 조사 때도 중정 조사관들이 옆에서 지켜보며 위협한 점이 인정된다’고 무죄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고문에 의한 진술서가 증거 능력이 없다는 판례가 확립되기까지 우리의 민주주의와 사법권 독립은 많은 곡절을 거쳤다.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반공(反共)은 옳았지만, 독재 권력을 연장하려고 인권을 유린하는 오도된 반공주의도 없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어제의 법원 재심에 앞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측은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들에 대해 ‘비현실적인 좌파’였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민청학련을 박살내려는 시나리오에 따라 조작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민청학련과 북한을 연결하는 인혁당 재건위 조직이 실제로 결성됐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엄정한 사법 기준에서 보자면 증거가 부족하고, 과거 재판에서 사용된 증거들은 고문에 의해 조작됐다는 것이 이번 재판의 결론이다.
재판은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돼야 한다. 당시 국가 폭력을 추인하는 고무도장 판결을 내린 법관들은 모두 사법부를 떠났지만 오늘을 사는 법관들이 되새겨야 할 교훈이다. 그리고 오늘의 사법부도 과거의 사법부와는 역방향에서 ‘정치에 물들지 않았는지’ 자문(自問)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