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속초시에는 함경도 실향민들이 만든 독특한 음식 문화가 있다.
‘진양횟집’(033-635-9999)은 함경도식 오징어순대의 명가(名家)로 유명한 곳이다. 이정해(76) 이영숙(53) 씨 모녀가 2대에 걸쳐 고집스럽게 고향의 맛을 지키고 있다. 어머니 이 씨는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가족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 당시 수산전문학교 2학년에 다니던 곱고 꿈 많은 19세 처녀였다.
○ 주인장(이정해 씨)의 말
고향이 함경남도 신포야. 전쟁 통에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그 길이 돌아갈 수 없는 먼 길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지. 스물셋에 결혼해 아이 다섯을 뒀어.
실향민 고생을 어떻게 말로 다할 수 있을까. 먹고살려고 항구 앞 좌판에서 어물을 팔았지. 그러다 53세 때 식당을 시작했어. 그 솜씨면 식당을 해도 된다는 말도 있고, 점점 잊혀져가는 함경도식 음식을 살려야 한다는 얘기도 들었거든. 고향에서 어머니 어깨 너머로 배운 맛이야.
오징어순대는 이제 별미가 됐지만 사실 배고픈 음식이야. 오징어 잡으러 나간 어부들이 먹을거리가 마땅치 않아 오징어에 부식을 넣어 먹으면서 시작됐다는 얘기도 있어. 설 무렵이면 오징어순대 말고 명태 순대를 많이 했어. 명태 내장을 뺀 뒤 속으로 두부, 김치, 돼지고기를 채웠어. 보름 동안 문 밖에 걸어 얼렸다 나중에 쪄서 먹는 거지. 이곳에서도 몇 번 만들어 봤는데 명태순대는 기후가 달라서 그런지 제 맛이 나지 않아.
오징어순대에는 작은 오징어가 좋아. 크면 모양내기가 힘들고 잘 터지거든. 오징어에서 내장을 뺀 뒤 다리를 갈아 볶아. 여기에 야채를 넣어 볶아야 오징어의 수분을 흡수하지. 수분이 많으면 순대의 모양이나 맛이 좋지 않아. 여기에 무친 시금치, 찰밥, 양념(고춧가루, 깨, 마늘, 참기름)을 넣고 속을 채우지.
○ 주인장과 식객의 대화
▽식객=한입만 먹어도 배가 든든합니다. 맛도 그렇고 오징어와 속의 색감이 너무 좋네요.
▽주인장=배고프지 말라고 만든 음식인데 그래야지.
▽식=함경도 음식으로 식해(食해)도 유명한데요.
▽주=얼마 전 요리잡지사에서 다녀갔어. 식해는 생선을 토막낸 뒤 좁쌀과 버무려 발효시킨 음식이야. 우리 집에서는 가자미, 명태, 대구로 식해를 만들어.
▽식=고향의 맛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습니까.
▽주=힘들어. 손도 많이 가고 재료도 달라지고. 그래도 딸이 애쓰니까 지켜지겠지.
속초=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