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날씨는 영원한 화제(話題)다. 처음 만나 서먹한 사람들도 날씨 얘기를 하면 금세 어색함이 가신다. 반면에 비즈니스 세계에서 정치에 관한 대화는 금물이다. 잘나가던 협상도 엉뚱한 정치적 견해 차이 탓에 깨지기 일쑤다. 그런데 올해 이 두 가지 문제가 한꺼번에 뉴스의 중심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나라를 책임질 지도자를 뽑는 일이 관심사다. 나라 밖에서는 이상난동과 폭설 혹한 등 기후변화가 단연 화제의 중심이다.
지도자를 잘 뽑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인류 역사는 인간과 국가의 운명이 정치 못지않게 기후에 크게 좌우돼 왔음을 보여 준다. 21세기 과학문명 시대에 웬 기후결정론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유일하게 과거의 기후패턴을 재구성할 수 있는 유럽 역사는 이런 사실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1816년 유럽은 ‘여름이 없는 해’였다. 6월까지 서리가 내렸고 씨앗은 싹 트지 않았다. 흉작과 함께 찾아온 전염병으로 수십만 명이 죽었다. 1815년 인도네시아 숨바와 섬에서 탐보라 화산이 터진 이듬해다. 세인트헬렌스 화산 폭발의 150배 규모였고 히로시마 원자폭탄 6만 개에 맞먹는 그 폭발은 1만 년 이래 가장 큰 폭발이었다. 머나먼 이국땅의 화산 폭발이 혹독한 기후변화의 원인임을 알아차린 사람이 당시엔 아무도 없었다.
유럽에서 유난히 춥고 이상기후가 많았던 1300∼1850년을 소빙하기라고 한다. 이전까지 유럽의 기후는 따뜻했다. 그 시기 바이킹은 멀리까지 배를 타고 나가 그린란드를 발견했다. 여름철이면 풀이 자라고 먹을 것도 풍족해 ‘그린’이란 이름이 붙었다.
인류고고학자인 브라이언 페이건은 저서 ‘기후는 역사를 어떻게 만들었는가’에서 소빙하기가 유럽 역사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에선 거듭된 흉작으로 식량폭동이 자주 발생하다가 1789년 프랑스대혁명으로 이어졌다. 1843년 아일랜드에서는 감자 농사의 극심한 흉작으로 200만 명이 굶어죽었다. 페이건은 기후변화는 결코 점잖게 천천히 오지 않으며 기후는 인간 역사에 반드시 관여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빙하기가 아니라 온난화의 위기를 맞고 있다. 유엔의 기후변동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대량소비형 사회가 지속되면 21세기 말 지구 평균기온은 최대 6.3도, 해수면은 58cm 상승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곧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지금 일어나는 기후변화를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더 있다. 과거와는 달리 인간이 인위적으로 초래한 일이라는 점이다. 지구생태계가 인간에게 어떤 보복을 할지 두렵다.
기후변화 사실을 입증한 것은 ‘과학’이지만 해결은 ‘정치’의 영역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누가 기후변화 해결을 주도할 것인가이다. 지구온난화를 일관되게 부인했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신년 국정연설에서 미국 사회의 석유중독을 지적하며 이례적으로 ‘휘발유 소비 20% 감축’을 제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선이 국내의 최대 사건이라면 기후변화는 세계의 최대 사건이다. 세계는 기후 위기의 징후에 놀라며 에너지 절약형 사회로의 전환을 서두르는데 우리만 무풍지대인 듯 조용하다. 이 무신경이 언제 복수를 당할지 생각하면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