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해 대한민국 국민이 된 탈북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 그제 서울에서는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 주최로 기념대회도 열렸다. 참가자들은 “자유북한인(탈북자) 1명이 북한동포 1명을 구출하는 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고 한다. 남한사회 정주(定住)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만 해도 감당하기 힘들 텐데 이런 다짐까지 했다니 고맙고 미안하다. 탈북자에 대한 정부와 사회 일각의 무관심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탈북자는 우리 사회의 당당한 일원일 뿐 아니라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밑거름이다. 전문가들은 “남한 내 탈북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는 사실 자체가 김정일 정권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1만 명의 탈북자들이 북의 가족들에게 보내는 돈과 ‘외부 소식’만 해도 북의 변화를 유도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
북한 동포들은 이들과의 직간접 교신을 통해 국제사회가 김정일 정권의 무모한 핵실험에 어떤 제재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북한 곳곳에서 활동해 온 인도주의 지원단체들은 왜 쫓겨나고 있는지를 안다. 소통은 북 내부의 자유와 개방 요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대량 탈북사태에 대비한 비상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 탈북자들을 북한 체제 변화의 동력(動力)으로 인식하고 준비하려는 생각도, 정치적 상상력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김정일 정권의 눈치를 보며 탈북자들을 대북 포용정책에 방해가 되는 ‘골칫거리’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다.
이제라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러시아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한국의 탈북자들은 ‘작은 북한’이다. ‘작은 북한’을 잘 관리해야 ‘큰 북한’을 잘 운영할 수 있다”고 했다. 의미 있는 지적이다. 입만 열면 ‘민족끼리 통일 합시다’를 외치는 친북 좌파세력이 반드시 들어야 할 말이다.
아울러 우리 사회 전체도 탈북자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탈북자들을 ‘사회적 실패자’쯤으로 여기는 분위기에서는 그 어떤 남북관계 개선 노력도, 통일 준비도 실효(實效)를 거두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