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자기광고 시대라고 하여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곧잘 부정된다. 특히 취직 전선에서는 자신을 적절하게 알리기 위해 말이라는 수단을 사용한다. 그러나 ‘침묵은 금’이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도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지 않은 말을 삼가라는 얘기일 뿐이다.
‘多言數窮(다언수궁)’이라는 말이 있다. ‘多’는 ‘많다’는 뜻이다. ‘大多數(대다수)’는 ‘크게 많은 수’라는 말이고, ‘過多(과다)’는 ‘과도하게 많다’는 말이다. ‘從多數(종다수)’는 ‘많은 수를 따르다’라는 말이다. ‘從’은 ‘따르다’라는 뜻이다. ‘言’은 ‘말’이라는 뜻이다. ‘數’는 ‘수’라는 뜻이다. ‘數學(수학)’은 ‘수에 대한 학문’이라는 뜻이고, ‘算數(산수)’는 ‘수를 계산함’이라는 말이다. ‘수’라는 뜻에서 ‘수를 세다, 계산하다’라는 뜻이 나왔고, 다시 이로부터 ‘헤아리다, 생각하다’라는 뜻이 나왔다. ‘헤아리다, 생각하다’라는 뜻에서 ‘수단, 방법’이라는 뜻이 생겼다. ‘心中有數(심중유수)’는 ‘마음속에 방법이 있다’ 즉, ‘속셈이 있다, 승산이 있다’는 말이다.
‘窮’은 ‘끝나다’라는 뜻이다. ‘無窮(무궁)’은 ‘끝이 없다’라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국화인 ‘無窮花(무궁화)’는 ‘끝없이 피는 꽃’이라는 뜻이다. 무궁화는 한 송이가 피었다 지면 다른 송이가 피고, 이 송이가 지면 또 다른 송이가 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끝나다’라는 뜻에서 ‘다하다, 궁하다, 가난하다’라는 뜻이 나왔다.
이런 의미를 정리하면 ‘多言數窮’은 ‘많은 말은 수단을 궁하게 한다’, 즉 ‘말을 많이 하면 수단이 궁해진다’는 말이 된다. 쉽게 풀면 ‘말을 많이 할수록 수가 막힌다’는 뜻이다. 말을 하면 책임이 뒤따른다. 말을 많이 하면 그만큼 책무가 늘어나고, 그럴수록 행동반경이 좁아진다. 따라서 자신의 수가 궁해진다. 조직의 수장이 말을 아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허 성 도 서울대 교수·중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