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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성희]프레전티이즘

입력 | 2007-01-29 19:36:00


옛날 졸업식장에선 우수상은 못 타더라도 개근상 하나쯤은 집으로 들고 와야 낯이 섰다. 하루도 빠짐없이 수업에 참석했다는 것은 학생의 근면성과 성실성을 가늠하는 잣대로 여겨졌다. 그러나 감염전문의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무리 아파도 엄마 등에 업혀 학교에 온 학생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질병이 퍼졌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래서 요즘엔 개근상 제도를 아예 없앤 초등학교가 많다.

▷아파도 참고 출근하는 것을 ‘프레전티이즘(presenteeism)’이라고 한다. 미국 기업들이 직원들의 프레전티이즘 때문에 매년 1800억 달러(약 170조 원)의 손실을 입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법률자문회사인 CCH에 따르면 기업 인사담당자들의 56%가 “아픈 몸으로 출근하는 직원들로 인한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아픈 직원이 회사 전체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무리해서 일하다 병을 악화시키며 직장 동료에게 병을 옮길 우려도 높다는 것이다.

▷프레전티이즘으로 인한 손실은 아프다고 습관적으로 결근하는 ‘앱센티이즘(absenteeism)’의 손실 규모를 넘어섰다. 앱센티이즘으로 미국 기업들이 보는 손실은 연간 1180억 달러(약 110조 원)에 이른다. 많은 기업이 병가(病暇)를 인정하고 있으나 문제는 진짜로 아파서 쉬는 것인지 아니면 부적절한 이유로 결근하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는 점이다. 프레전티이즘과 앱센티이즘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아프다는 핑계로 결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 기업들은 월급에서 쉰 날짜만큼 일당을 공제하는 관행이 있다. 그런데 거꾸로 이런 관행이 아파도 출근하는 직원을 양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아파도 출근족(族)’은 개근상에 집착하는 한국에 더 많은 것 같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쓰러지더라도 회사 문턱을 밟고 쓰러져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도 그러려니와 실직에 대한 불안이 크기 때문이리라. 이제 아픈 직원을 집에서 쉬게 하는 것도 기업 경영에서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됐다. 아픈 사람은 쉬어야 빨리 회복된다.

정 성 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