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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대선 풍향, 경제가 가를까

입력 | 2007-01-29 19:36:00


노무현 대통령은 이달에 자주 TV에 나와 결과적으로 이명박 씨를 도와준 것 같다. 대통령은 개헌 말고 경제를 챙겨 달라는 국민에게 “경제정책은 차별화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해 버렸다. 후보 때 이회창 씨보다 나은 경제성적을 공약했고, 취임 반년 뒤 “정말 경제대통령 한번 하고 싶다”고 하더니 ‘누가 해도 별 수 없다’고 오리발을 내민 격이다.

이처럼 경제 리더십의 중요성을 스스로 부정하며 책임 떠넘기기를 거듭함으로써 거꾸로 국민에게 ‘경제로 차별화할 지도자’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대통령은 “실물경제 좀 안다고 경제를 잘하는 게 아니다”고까지 말해 ‘이명박 때리기’임을 확인시켰다.

다른 대선주자들도 이 씨가 선점한 듯한 ‘경제지도자 이미지’에 날개를 달아 줬다. 박근혜, 손학규, 정동영 씨는 동시다발로 ‘이명박 경제’를 폄훼해 ‘경제 이슈’의 중원(中原)을 이 씨가 지키도록 오히려 도와준 셈이다.

‘경제는 누가 해도 비슷하다’는 얘기는 무책임할 뿐 아니라 무능을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처 전 영국 총리의 대처리즘,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레이거노믹스는 영국병(病) 치유와 미국경제 부활을 이끌었다.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도 경제지도자로 성공했고, 메르켈 독일 총리는 독일병을 고쳐 가고 있다. 중국경제의 무서운 발전도 덩샤오핑의 ‘중국식 시장경제’ 리더십을 빼고는 설명이 안 된다.

지금은 국민의 관심 쏠리지만

노(盧)노믹스는 성공한 선진국 지도자들의 경제철학과 정책을 뒤집은 것이라고 보면 알기 쉽다. 성장보다 분배, 시장자율 대신 국가규제, 감세(減稅) 아닌 증세(增稅), 작은 정부를 거부한 큰 정부 지향 등이 그것이다. 기업의 모럴해저드를 없애겠다며 노조의 모럴해저드를 온존시킨 정권체질, 세계적 민영화 추세에 역행하는 공기업 비대화 방치, 안보도 경제의 핵심적 펀더멘털(기초 여건)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 부족도 심각한 문제다.

물론 지난날의 압축적 고도성장에 따른 부작용이 국민에게 비용을 물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1960, 70년대 개발시대 패러다임으로는 21세기 우리 사회의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손학규 씨의 지적도 일리 있다. 오로지 성장만을 위한 정책은 현실로 가능하지도 않다.

박근혜 씨는 “경제전문가들이 훌륭한 정책을 펼 수 있도록 하는 경제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맞다.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민을 가난에서 해방시키려는 자신의 집념과 서강학파의 전문성을 행동으로 결합해 한강의 기적을 주도했다.

실물경제 좀 안다고 경제 잘하는 게 아니라는 대통령의 말도 다 틀린 건 아니다. 내가 다 안다는 독선이 경제의 독약이 될 수도 있다. 시장경제를 근본적으로 이해(理解)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통령조차 “어떤 대학자하고도 10시간 토론할 수 있다”는 판이다.

한마디로 ‘경제’라고 하지만 큰 정책방향부터 미세조율 대책까지 폭과 깊이는 한이 없다. 이명박 씨의 이미지가 허상일지도 모른다. 정말 경제로 정면승부를 하겠다는 대선주자들이라면 현직 대통령보다 말은 적게 하되 훨씬 알기 쉽고 정합성(整合性) 있는 경제비전을 갖고 나올 일이다.

하기야 대선이 경제 하나로 결판날 나라가 아니다. 과거(過去)와 도덕성, 이념과 민족 같은 재료들이 또 다른 흥행성, 차별성, 시의성을 만들어 내며 대선 판도를 흔들 것이 뻔하다. 여권(與圈)이 전열을 정비하고 나면 더욱 그럴 것이다.

과거 캐기, 민족 무드 흥행 가능성

대통령이 되려면 능력뿐 아니라 족적도 검증받는 게 불가피하다. 현직 대통령이 5공 청문회 때 국회에서 보였던 난폭한 언행은 그 당시엔 별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뒤의 비슷한 패턴은 두고두고 국민을 힘들게 했다. 이처럼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고, 도덕성에 결정적 흠이 있으면 리더십을 살리기 어렵다.

북한과 미국, 남북한 사이의 구도가 급변 양상을 보여 ‘전쟁이냐 평화냐’ 하는 안보 이슈가 대선의 주 쟁점이 될지도 모른다. 북이 급속한 평화무드의 확산이라는 훈풍을 남에 불어넣어 대선이 ‘김정일 변수’에 좌우되지 말란 법도 없다. ‘감성(感性)정치, 감성경제’가 승리한 2002년 대선이 재현될 수도 있다.

국민은 이번엔 쓸모 있는 대통령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