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37·KIA)은 전성기 때 곧잘 스즈키 이치로(34·시애틀)와 비교되곤 했다. 정확한 타격에 빠른 발, 그리고 강한 어깨까지. 공수주 모두에서 천재성을 발휘했던 둘은 닮은꼴이었다.
작년에 타율 0.242에 그친 이종범은 이제 이치로의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이종범은 이치로가 가지지 못한 장점을 갖고 있다. 바로 ‘주장 본성’이다.
작년 한국 야구는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4강 신화를 이뤘지만 12월 도하 아시아경기에서는 대만은 물론 사회인 야구 선수들이 주축이 된 일본에도 졌다.
두 대회에 모두 참가한 한 선수는 “단기전은 실력보단 기 싸움이다. WBC 때의 분위기는 아시아경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좋았다”고 말했다.
그 중심엔 바로 ‘주장’ 이종범이 있었다. 매일 밤 이종범의 호텔방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훈련이나 경기가 끝나면 너도나도 이종범의 방에 모였다. 그는 때론 큰형처럼 후배들을 포용했고 때론 엄한 아버지처럼 꾸짖기도 했다.
이종범은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우승), 2003년 삿포로 아시아선수권(본선 탈락) 때도 주장을 맡았다.
그러나 WBC 때 일본팀 주장이었던 이치로는 독불장군식 태도로 일관해 일본 대표 선수들 사이에서도 신임을 얻지 못했다. 한 일본 기자는 “선수들이 내부적으로 이치로의 행동 방식에 크게 반발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올해 한국 야구는 11월 대만에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 대회에 참가한다. 홈팀인 대만이나 호시노 센이치 전 한신 감독을 사령탑으로 선임해 일찌감치 준비에 들어간 일본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다시 한번 이종범의 카리스마가 필요하지만 이젠 무거운 주장 자리를 후배들에게 양보해야 될 때가 되기도 했다. WBC 참가 후 시즌 내내 고전했던 이종범의 모습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포스트 이종범’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 한국 야구의 현실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