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의 지하철 대공사가 개발론자와 고고학자의 갈등으로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
정부 당국과 도시계획 담당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지하철을 건설해 교통난을 해소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재 관리 및 보존을 내세우는 고고학계와 사사건건 부닥치면서 공사는 지지부진한 양상이다.
총연장 25km인 지하철은 고대 로마의 유적지가 몰려 있는 구시가지를 관통할 예정. 콜로세움, 베네치아 광장, 토레아르젠티나 광장 등 지하철이 통과하는 주요 지역마다 고대 로마의 유적과 유물이 대거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터널 공사도 로마문화재보존국(RPO)의 요청에 따라 유적 훼손을 막기 위해 지하 24m 아래 깊숙한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작업 구간들을 미리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고고학자들은 유물 발견 때마다 작업을 일시 중단하고 유물을 현장 보존할 것인지,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인지, 파괴할 것인지 결정을 내리고 있다.
고고학계의 철저한 감독을 받다 보니 공사 일정은 자연히 늦어지고 있다. 2000년대 초에 시작된 공사는 당초 2008∼2009년에 완료될 예정이었으나 2015년 이전에는 끝내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일정이 지연돼 공사비용도 1마일(1.6km)을 파는 데 평균 3억7500만 달러가 들 정도로 돈 잡아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개발론자들은 관광객이 몰리는 구시가지의 살인적인 교통난과 공기 오염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하철 공사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재 보존을 중시하는 문화적 분위기와 법적 규제에 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구시가지 지역은 지하주차장 한 곳 건설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건설공사가 철저한 규제를 받고 있다. 현재 로마에는 구시가지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지하철 2개 노선이 운행되고 있는데 이 노선의 완공에 무려 28년이 걸렸다.
그렇다고 고고학계가 지하철 건설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대규모 발굴작업이 수반되는 지하철 공사를 통해서만 땅속에 묻힌 유물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고고학계가 지하철 공사를 이용한다”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한편 로마뿐 아니라 그리스 아테네는 문화재 보존 때문에 공사가 늦어져 2004년 개최된 올림픽의 메인스타디움 공사가 지연될 뻔했으며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지하철 공사는 아스테카 사원 유물이 발굴되면서 노선이 바뀌기도 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