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하나의 큰 글’이란 뜻이다. 애초의 글자 이름 ‘훈민정음’(백성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을 국어학의 시조(始祖)인 주시경 선생이 고쳐 이른 것인데 누구나 이를 이론의 여지없이 수긍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훈민정음은 인류 문자사에서 그 창제자와 연도가 뚜렷한 ‘하나’뿐인 문자인 데다가 새의 발자국을 본뜨거나 남의 흘림글씨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심오한 철학과 엄정한 과학을 지닌 ‘큰 글’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창제 564년이 지난 오늘, 21세기 정보 사회를 이끌고 있는 첨단 기기인 컴퓨터와 인터넷에 가장 잘 적응해 분당 무려 500자 이상의 정보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그 우수성을 입증한 또 하나의 예라 하겠다.
그처럼 자랑스러운 유산을 세계만방에 알리고자 하는 것은 국수주의가 아니더라도 가져봄 직한 생각임에 틀림없다.
근래 들어 인천공항의 이름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이 인천공항을 ‘인천세종국제공항’으로 바꾸기 위한 개정 법률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방안이 겨우 ‘인천국제공항’에 ‘세종’ 자를 덧붙이자는 것이라면 아무래도 수긍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무엇을 선양할 수 있단 말인가? 정작 대왕의 ‘함자’를 알리는 것도 아니요, 중국에 여섯 명이나 실재했던 ‘세종(世宗)’이란 중국식 묘호(廟號·임금의 시호)를 세계에 내세우겠다니 ‘동북공정’의 와중에 괜한 역사적 오해나 사지 않을까 걱정이다.
또 누군가를 기리거나 추모할 때에는 그에 걸맞은 시(時)와 공(空)과 격(格)을 갖춰야 하는 법인데, 대왕과 인천(仁川)은 역사적으로 동거할 인연이나 명분이 희박하고 번잡한 공항의 이미지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한글’과 ‘대왕’을 선양할 양이면 좀 더 효과적이고 진지한 방안이 얼마든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 같은 유의 한국어 교육기관을 세계 각국의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설립하도록 해 ‘한글’을 세계 속에 심어 나가는 일일 것이다.
공연히 공항 명칭에 지명과 인명을 합쳐 쓰는 게 추세라는 섣부른 주장을 하거나, 품격에 맞지도 않게 묘호를 ‘애칭’으로 쓰자고 해서는 설득력이 없다.
잘츠부르크와 울란바토르를 모차르트, 칭기즈칸 공항이라 부른다지만, 그것도 정식 명칭이 아닌 ‘별칭’에 불과하다는 점도 돌이켜 볼 일이다.
조우성 시인·인천시 시사편찬위원 chow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