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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승자의 처세를 일러주마… ‘전쟁의 기술’

입력 | 2007-02-03 03:00:00


◇전쟁의 기술/로버트 그린 지음·안진환 이수경 옮김 640쪽·2만5000원·웅진지식하우스

이 책, 표지부터 의미심장하다. 뒤춤에 칼을 숨긴 남자. 이 남자의 얼굴은 속내를 알 수 없게 검게 칠해져 있다. 이 남자, 칼을 숨긴 까닭이 뭘까.

무한경쟁의 시대다. 나만이 나를 지킬 수 있다는 불안감이 현대인을 처세서로 이끈다. 처세서 대부분은 도덕적인 ‘전략’을 이상으로 제시한다. 믿음을 주라, 인간관계를 중시하라…. 그러나 실제로는 경쟁자를 따돌리기 위해 모략도 서슴지 않는 게 현실 아닐까.

이 책은 교활한 라이벌이 우글거리는 세상에서 허울 좋은 도덕과 명분만 지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충고한다. 저자가 보기에 삶은 경쟁자와 한판승부를 벌여야 하는 전쟁터다.

전쟁의 기술은 승리를 추구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방법. 모략과 책략도 정당화된다. 총부리가 앞에 있으니 살기 위해 무슨 수든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성과 감정의 균형을 유지하며 최소한의 손실로 일상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실용적인 전략을 담았다. 손자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나폴레옹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다양한 전쟁 교범과 경험을 참고서로 삼는다.

이를테면 ‘피를 흘리지’ 않고 상대를 압도하는 법과 라이벌의 심리를 파악하는 법, 승산 없는 경쟁을 피하는 법 등이 공격과 방어의 기본이다.

백미는 5부 ‘모략의 기술’이다. ‘상대를 자멸로 이끌 심리적 계책을 이용하라’는 따위의 충고는 비도덕적이지만 저자의 태도는 단호하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홀로 평화주의자가 돼 봐야 소용없다는 것.

겉보기엔 매력적이지만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훔치거나 자신의 경력만 생각하는 경쟁자가 있다.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 저자는 미국 남북전쟁 말기 북군 총사령관을 지낸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을 불러온다.

그랜트 장군 수하에는 존 A 매클러넌드 준장이 있었다. 매클러넌드 준장은 질투와 야망으로 가득 찬 인물. 그는 승진을 위해 그랜트 장군의 요새 탈환 아이디어를 훔친다. 그러나 그랜트 장군은 섣불리 화를 내지 않았다. 그 대신 정중하고 합리적인 명령이 담긴 전보로 매클러넌드를 시나브로 전투의 핵심에서 밀어냈다.

인정에 목말라했던 매클러넌드는 결국 참지 못하고 상관에 대한 불만을 링컨 대통령에게 고자질했다가 분란을 조장하는 사람으로 찍혀 해임된다. 그랜트 장군은 뒷짐 지고 라이벌이 자멸하는 걸 지켜본다.

속임수가 강력한 무기라는 충고도 의미심장하다. 1943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앞두고 영국군은 히틀러를 속일 방법을 찾는다. 독일군 첩자가 영국군에 침투해 있는 상황이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국군이 선택한 전략은 히틀러가 믿지 못하는 첩자에게 진짜 작전을 알려주고 믿을 만한 첩자에게 가짜 계획을 알려주는 것. 가짜가 명백히 진실인 것처럼 보여 주기만 해서는 영리한 히틀러를 속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전략은 멋들어지게 성공한다.

이 ‘기술’은 경쟁자가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할 때 더 효과적이다. 경쟁자가 믿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 주면서 상대의 마음을 지배하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전쟁뿐 아니라 정치와 문화, 스포츠의 전략도 등장한다. 촬영장이라는 전장에서 배우와 스태프라는 군대에 승리를 거둔 명장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사례도 인상적이다. 히치콕은 배우들에게 잔소리하거나 화내지 않았지만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전쟁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야만적인 전쟁의 신 아레스가 아니라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따른다. 갖가지 심리전은 결국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손자의 지혜다.

저자 로버트 그린은 인간 행동방식의 본질을 분석한 ‘유혹의 기술’, ‘권력을 경영하는 48법칙’으로 유명해졌다. 도덕적 잣대에서 벗어나 불편한 현실을 인정하자는 주장 때문에 그는 마키아벨리의 부활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이 책에 소개된 온갖 ‘기술’에 무릎을 탁 치는 순간, 조금은 슬퍼지는 것도 사실이다.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 참혹한 전쟁의 기술을 끌어들이는 것은 우리 삶이 그만큼 냉혹해졌다는 뜻일까. 이런 기술이 절실하게 또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것에 행복해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원제 ‘The 33 Strategies of War’(2006년).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